삶의 이야기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녹색세상 2007. 12. 12. 01:08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 않으나 교수님이 ‘산업현장 소음으로 인한 난청’과 관련해 역학 조사를 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돈 안 되는 산업의학과에서 하나 뿐인 몸뚱아리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건설현장에서 사회생활 대부분을 했고, 그것으로 먹고 살며 자식 키우고 노부모 모시는 사남매의 장남입니다. 산재사고를 당하기 전의 제 수입은 괜찮아 살아가는데 별 지장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히 10년 전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경제 대란을 맞은 후 제가 수차례나 당한 산재사고는 우리 가족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말았습니다.


  조그만 건문건설업체지만 기술 있는 관리직으로 근무했는데 IMF 사태로 잘려 여름이면 무더위와 싸우고, 겨울이면 칼바람 맞으며 일 해야 하는 현장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술이 있으니 갈 곳이라도 있어 다행이라며 위안을 삼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원래 했던 일인지라 적응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고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안전 업무를 오래 봐온 탓에 안전에 관한한 누구보다 철저했는데 산재사고는 예고 없이 내게로 오고야 말았습니다. 일년 간에 걸친 요양 중에도 경쟁 사회에 살아남으려고 컴퓨터를 배우고 캐드도 배우며 나름대로 준비를 하는 등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산업의학전문가니 잘 아시겠지만 건설현장은 일년에 75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고, 다쳤다 하면 장기 투병인 특성을 감안하면 거의 전쟁터나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전쟁 치르는 나날을 보내는 건설노동자들의 희생으로 건물은 올라가고 다리와 도로는 만들어집니다. 교수님이 근무하는 병원과 예비의사들을 가르치는 의대건물도 저와 같은 노동자들이 없으면 짓지 못합니다. 아침 7시에 작업 시작하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야 밥 한술 먹고 나설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겨울이면 새벽 칼바람이 뼈 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몸서리나지만 생계를 위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몇 차례에 걸쳐 산재 사고가 겹치다 보니 ‘우울증’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주치의사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급성스트레스 장애도 일부 있다고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우울증만 요양 승인을 받고 기나긴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정신과 질환에 대한 편견이 많아 남들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가슴앓이 많이 했습니다. 장기 요양환자라고 근로복지공단에서 경북대병원으로 특진을 보냈더니 ‘심한 우울증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12월 6일 대구서부지사에서 열린 자문의협의회에서 ‘요양필요 없슴, 우울증과 인과관계가 없슴’이라는 딱 한 줄의 자문 소견이 5명의 자문의사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와 저는 정말 황당했습니다. 토씨 몇 개만 틀릴 뿐 한 줄의 내용은 같더군요. 근로복지공단 서부지사에서는 ‘자문의 소견’에 따랐을 뿐이라고 하고, 자문의로 참석한 분들은 하나 같이 ‘근로복지공단에 물어보라’고 하는 등 사람을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떠 넘겨 분노가 머리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우리 전문성을 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전문성이란 상식에서 세분화 된 것이지 상식에 벗어난 것이 아니란 것은 의대교수니 누구보다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5명의 자문의 소견이 약간의 표현과 토씨만 다를 뿐 같은 내용으로 딱 한 줄로 ‘치료필요 없다’는 것이 가능합니까? 제가 법원의 사실조회에 대해 ‘빨리 답변해 달라’고 찾아 갔을 때 ‘자료를 검토하고 자문의들이 상의해서 적었다’는 말을 한 것은 자신의 소신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서로 짜고 적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지나친 억측인가요? 자기 전공분야가 아님에도 정신과 교수가 각종 검사를 통해 내린 의학적 견해를 단 몇 분 만에 뒤엎는 것은 전문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사×× 교수님.

  사회생활을 하거나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바른 말 못할 수도 있음을 저도 모르는 바 아니나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에 의학을 연구하는 학자요, 예비 의사들을 지도하는 교수요, 3차 진료기관의 임상의사란 분들이 ‘모르겠다’가 아닌 ‘요양필요 없슴’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한 게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되는 일 아닙니까? 이런 의대 교수들에게 비싼 진료비에 특진비까지 물어가며 치료 받으러 가는 데 이런 것을 ‘심한 도덕적 해이’라고 본다면 저의 지나친 억측인가요?


  교수도 사람이다 보니 실수할 수도 있고, 여러 사정 때문에 그냥 묻혀 갈 수도 있는 줄 저도 압니다. 그렇지만 3차 진료 기관의 의사요 의대교수라면 최소한의 상식은 지켜야 한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2005년 12월 6일 대구서부지사에서 있은 자문의협의회 소견을 보고 우리 가족은 ‘이러면 의사들 어떻게 믿느냐’며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거짓말 하는 의사 절대 안 한다’며 심각한 불신에 빠져 이를 보는 애비의 가슴이 찢어지게 합니다. 살림살이 어렵다 보니 변호사 선임할 수 없어 혼자 힘들게 재판에 힘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는 변호사가 있어 수시로 자문을 해줘 조금은 수월하지만 너무 힘듭니다. “돈 300만원 주고 맡겼으면 이 고생 안 해도 될 텐데”라는 생각 수도 없이 했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온 천하보다 소중하다’고 인류 최대의 스승 예수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살자고 하는 것이지 죽으려 하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제발 부탁드리건 데 법원의 사실조회에 의사의 양심에 따라 답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심에 패소하고 항소해 1년 넘게 하고 있는 재판에 지친 정도가 아니라 진절머리 납니다. 법률 용어는 물론이요 재판 절차도 모르는데 하려니 죽을 맛입니다. 저희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저는 아무리 어린 자식들이라도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아이들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자식들은 애비를 신뢰하는 것을 봅니다. 제발 사람 살려 주십시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는 건설노동자가 피눈물 나는 심정으로 이렇게 호소하니 부디 외면하지 말고 의학이라는 학문을 하는 학자요, 예비의사들을 지도하는 교수에 3차 진료기관의 의사로서 답변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사람 목숨 보다 더 소중하고, 사람 몸 보다 더 귀한 것 없이 않습니까 사××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