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산’은 세손 이산의 처절한 생존기다. 말이 좋아 '세손'이지, 지글지글 끓는 돌판 위에 놓인 삼겹살 신세가 따로 없다. 앉은 자리는 뜨겁게 달아올라 언제 새까맣게 타버릴지 모르는 데다, 사방에서 뾰족한 젓가락을 들고 찔러댄다. 아차! 하는 순간 저승길 순번 1번이고, 아차! 하는 순간 아버지 따라 뒤주 속에 들어갈 팔자다. 단지 ‘회사에서 살아남느냐’를 넘어 생존이 달린 게임이다. 이 모든 게 세손의 처세술에 달렸다. ‘이산’은 ‘처세술’ 완전정복이다.
또 ‘이산’은 세손의 ‘제왕 수업기’다. 현대로 치면 재벌2세 혹은 예비 CEO의 경영수업기다. 리더십 훈련기다. 영조는 왕이 될 재목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세손을 시험하고, '리더십'이 없다 싶으면 언제든 세손 이산을 내칠 태세다. 냉혹하다. 한편으로 영조는 세손에게 끊임없이 리더의 역할을 알려준다. 훈육한다. 이산은 성장하고, 리더십도 성장한다. 비즈니스 교과서 외전 같은 ‘이산’이 알려주는 처세술과 리더십.
그의 처세술― 내 적을 가까이
화완옹주를 우두머리로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을 밝혀낸 세손을 불러 영조가 말한다. “이번 일로 궐 안에 널 음해하려는 자들이 있음이 드러났다, 이제 넌 어쩔 셈이냐?” 세손은 답한다. “우선은 묻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상하다. 꼬리가 드러났는데, 잡아 당겨 몸통을 밝히지 않는단다. 영조가 또 묻는다. “어째서냐?”는 물음에 “지금 제가 나선다고 해서 지금 저들을 모두 발본색원할 수는 없습니다. 또, 지금 저들 몇몇을 찾아내 벌을 준다고 해도, 언제든 저와 뜻을 달리하는 자들은 또 생기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고 답하자 영조가 뿌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래. 정치란 그런 것이다. 임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임금 곁엔 뜻을 달리 하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허나 그 곁엔 반드시 임금을 지키고 보위할 자도 있어야 하지. 허니 넌 이제부터 저들과 맞설 네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잊지 말거라. 네 흉을 잡는 자들을 곁에 두거라. 또 그 곁엔 반드시 네게 길을 보여주는 자들을 심어야 한다. 알겠느냐?”
하지만 세손보다 일찍이 이를 알고 몸소 체화한 이가 ‘이산’엔 있었다. 이산의 책사가 된 지 얼마 안 돼서다. 홍국영은 다짜고짜 세손더러 500냥을 내달라더니, 그 돈으로 뻔뻔하게 집을 산다. 정후겸 옆집이다. 정후겸은 화완옹주 양자다. 세손을 몰아내려는 노론 쪽 책사다. 세손 책사인 홍국영이 가장 견제해야 할 인물이다.
“내 옆집이라, 어째서인가?” 인사하는 홍국영에게 의아한 정후겸이 묻자 홍국영이 뺀질뺀질 웃으며 말한다. “자고로 친구를 가까이하되, 적은 더 가까이하란 말이 있지요.”라고 답을 한다. “나에게 라이벌이고 되고 도전이 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피하고 싶다. 하지만 리더를 성장시키는 도전이 된다.”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도 라이벌일수록 가까이하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고단수의 처세술’이라는 것이다.
“더 가까이 두고 연구를 해야만 어떻게 대처할 수 있고 내성도 기를 수 있다. 조직에서 A와 B가 라이벌 관계일 때, A에게 B만 없으면 잘 나갈 거 같지만, B가 없어지면 A도 주목을 못 받고 힘이 빠진다. 그게 라이벌 관계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면이 있다. 배척하고 멀리 할수록 자기가 더 성장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라이벌·경쟁자란 밟고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고 서로를 키워주는 존재다. 현대 사회가 전쟁터도 아니고, 라이벌이란 서로에게 자극을 준다.” 옛말에 미운 놈 떡 하나 주랬다. 맞다, 이젠 미운 경쟁자에게 떡 하나 주면서라도 가까이 하라. 냄새 난다고 피하는 게 수가 아니다. 경쟁자말로 나를 키우는 ‘거름’이다.
그의 리더십1―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부터 파악하라
문무과 시험을 앞 두고다. 영조가 세손에게 묻는다. 문과 시험 시제에 대해 말해 보거라. “과거란 임금을 도와 정사를 펼칠 인재를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특한 세손이 대뜸 말한다. “요순시대의 효행을 논하라는 이 시제는 바람직하지 않사옵니다.”
대뜸 바람직하지 않다는 세손에게 영조가 묻는다. “너라면 무슨 시제를 내겠느냐?” 세손이 답한다. “저라면 부패한 육조의 관원들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를 묻겠습니다.” 조정 중신들 얼굴이 뭐 씹은 강아지마냥 일그러진다. 그를 쓰윽 둘러보던 영조가 말한다. “군주의 현명함은 그처럼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 있다. 잘 했다.” 영조가 물은 건 리더가 제일 먼저 할 일이 무언가다. 영조는 말한다. 현명한 리더는 시급하고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세손은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고위 공무원의 부패를 들었다. 리더가 되려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부터 파악하라
그의 리더십2―대답하지 말고 질문하라
임금이 신하들과 실무를 논하는 ‘차대’ 때다. 영조가 이른다. 세손이 ‘차대’를 주재하라. 조정 중신들은 마지못해 고한다. 도성 시장에 허락받지 않고 장사하는 장사치들, 바로 난전이 성행해 문제다. 시전 상인들이 난전을 단속할 권한을 더 강화해 달라. 이를 듣던 세손이 대뜸 묻는다. “난전물 속공권이 무엇입니까?” 대전이 술렁인다. 질문이 날카로워서가 아니다. 너무 바보 같아서다. 세손이 어떻게 저 뜻도 모르고 묻느냐는 눈치다.
졸지에 ‘멍청이’가 된 세손, 굴하지 않는다. 그러건 말건 중신이 하는 설명을 태연히 듣던 세손이 또 묻는다. “시전 상인들이 사사로이 행패를 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난전 단속은 사헌부 등에서 하게 조처를 취한 걸로 아는데, 어째서 시전 상인들에게 그 권한을 강화해 주잔 거냐?” 중신이 그게 관례라 말하자, 세손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다.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묻는다.
“그렇다면 대감의 말은 지금도 시전상인들이 난전을 사사로이 단속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건가요? 게다가 대감의 말은 이를 더욱 강화해주자는 것이고요? (굳어진 신하들 얼굴을 바라보며) 이상한 일입니다. 어째서 호판 대감은 그 막대한 권한을 시전상인들에게 내어주자는 겁니까? 혹, 뒤를 봐줘야 할 시전 상인이라도 있는 겁니까?”
이거야말로 고도의 리더십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정치력 101’을 쓴 캐서린 K.리어돈은 말한다. 초심자는 모르는 정치 무기라며 "질문을 많이 던지라" 조언한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멋대로 지레짐작할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들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는 대신 그들의 생각을 직접 알아내라....어쩌면 여러분은 자신이 상대방을 그 동안 전혀 몰랐음을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상대방의 말 속에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될 가능성이 높다. (중략) 이때 자신의 질문이 퀴즈처럼 들려서는 안 되며,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명심하라. 리어돈은 말한다.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질문을 많이 던진다.” 오죽하면 소크라테스도 ‘문답법’으로 줄기차게 묻고, 쇼펜하우어도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이라며 말했다. “질문 공세로 상대방의 항복을 얻어내라.”
그의 리더십3― 상사보다 말단 눈치 봐라
세손은 영조에게 묻는다. “오늘 소손의 처결에 대해선 어찌 생각하시옵니까? 혹 소손이 모자라거나 지나친 것이…….” 세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조가 대뜸 세손을 나무란다. “내 너한테 뭐라 했더냐? 임금인 내 맘에 드는 정치를 하지 말라 했다. 누구의 맘에 들어야 한다면 백성의 맘에 드는 정치를 해야 하고,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백성의 눈치를 보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니 네 처결에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있는지 늘 저들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리더는 일을 행하고 나서, 자신이 한 일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야 한다. 리더는 사원들, 나아가 그 정책을 누릴 이들을 살피고 그 정책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는 데 게을러선 안 된다.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일방적 강압, 통제 리더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하게 하는 코칭적 리더가 필요하다. 그건 현재 어느 조직이나 부인할 수 없는 상태다.” 그리하여, 사람들 통해서 성과를 내는 게 리더십이다. (오마이뉴스/조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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