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한미FTA 재협상 있다, 없다?……협상 끝나기는 한 건가?

녹색세상 2007. 4. 11. 01:30

‘한미FTA 재협상 논란’을 보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공식적으로는 끝났다. 한덕수 국무총리,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 등 한미 FTA의 주역들은 연일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에 출연해 자기들 입맛에 맞춰 ‘취사선택’한 한미FTA 협상 결과를 선전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여전히 협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외환 세이프가드의 도입 내용 △동의명령제의 도입 내용 △미국 농산물 시장의 개방 수위 등에 대해 아직 관련 협정문 문안조차 완결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미국 의회가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이에 응하기로 한국 협상단이 미국 협상단에게 구두로 합의해 줬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 협상단, 재협상하기로 이미 미국에 합의?

 
  한미 FTA 협상 막바지에 가장 큰 논란이 됐던 외환 세이프가드(Safeguard) 관련 협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제윤 재정경제부 국제금융심의관은 “이 부분의 협상에서만큼은 자신감이 있다”면서 자산 몰수 금지, 내외국인 차별 금지(NT, 내국민 대우), 미국과 제3국 차별 금지(MFNT, 최혜국 대우), 발동기간 1년 이상일 경우 미국 측의 사전 동의 등 이 제도의 도입에 따른 부대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단기 세이프가드 조치는 우리 외국환거래법보다 강화됐느냐 완화됐느냐’라는 천정배 의원(무소속)의 질문에 “구체적인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실무 협의를 통해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의명령제(Consent order, 경쟁당국과 경쟁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이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쌍방합의를 통해 사건을 종료하는 제도) 관련 협상도 마찬가지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에서 ‘동의명령제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냐’는 이원영 의원(열린우리당)의 질문에 “제도 도입을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이라며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 측의 공식적인 농업 개방안(Tariff Elimination Schedules)도 아직 한국 정부의 손에 들어와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민동석 농림부 차관보는 “협상 막바지에 민감 품목에 대해 급하게 처리를 했기 때문에 미국 측의 최종 검토가 필요한 것일 뿐 협상이 끝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 측의 최종 검토가 필요하다면 결국 협상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 협상단은 미 민주당이 향후 노동이나 환경 분야에서 새로운 요구를 해 올 경우 이에 대해 추가적인 협상에 응하기로 이미 미국 측에 구두로 합의해줬다는 후문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절대 재협상은 없다’고 국민들 앞에서 공언해 왔으니, 이 후문이 사실이라면 이는 이면합의에 해당한다.

 

 

 
  협정문 전문 공개는커녕 ‘비공식’ ‘부분’ 공개도 싫다니……

 
  한미 FTA 협상내용을 검증하는 데 가장 열심인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최근 국회 한미 FTA 특위 및 대정부질문 준비 차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와 관련된 협정문 조항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한국 협상단에게 요청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과 조세 정책은 ISD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으니, 실제로 협정문에는 그런 내용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심 의원이 요청한 것은 협정문 전문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딱 몇 개의 문구만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협상단의 대답은 ‘노(No)’였다. 그 이유는 “아직 정부에서 협정문 공개와 관련된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협정문 공개는 한미 양국 간의 협의 하에 결정돼야 한다는 정부의 설명에도 일리가 있다. 한미 양국 정부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할 협정문을 한국만 일방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FTA 협상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자마자 의회와 업계 등 이해당사자들이 협정문을 검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지 않은가.

 
  한미 FTA에 찬성하는 국회의원들마저 정부가 국회에조차 협정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 ‘졸속 협상’, ‘이면 합의’, ‘재협상 가능성’ 등의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언제든지 협정문을 공개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미국 측과 합의한 후 5월에 공개 하겠다”는 모순된 말을 동시에 하고 있다.

 

 ▲ 한미 FTA의 주역들. 오른쪽부터 노무현 대통령,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

 

  통상 협정문은 ‘고도의 추상성(High level abstraction)’을 지닌다. 협정문에 들어간 단 한 개의 단어나 문장이 현실에 적용될 때는 수 천, 수 만 개의 의미로 해석돼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00쪽에 달한다는 한미FTA 협정문의 방대한 분량도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전혀 놀랍지 않다.

 
  정부는 한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투자자의 국가 소송제’ 관련 협정문에 전혀 명시하지 않았다. 단지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정책 등 우리의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이라는 문구 하나만 딸랑 협정문에 들어갔을 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만 강변하고 있다. 이는 고도의 추상성을 지닌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이라는 말을 미국 기업들이 무조건 선의로 해석해줄 것이라는 ‘종교와도 같은 낙관’이다.

 
  협정문이 지난 고도의 추상성은 자칫 대한민국 국민들을 두 차례 우롱할 가능성이 있다. 한 편으로는 한국 정부가 추상적인 문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후 이를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향후 미국 기업들이 ‘한국 정부의 특정 부동산 정책이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릴 여지도 열어놓는다.
이런 추상성 때문에라도 협정문을 당장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미국 정부처럼 국회의원과 업계 관계자 등 이해 당사자들에게 만이라도 협정문을 공개할 수는 없는가?  (프레시안/ 노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