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한미FTA는 ‘깨진 바가지’ 벌써 ‘줄줄’

녹색세상 2007. 4. 6. 15:48

숨어 있는 ‘독소조항……세부 내용 공개시 속출 가능성

 

 ▲ 한미 FTA 협상 모습

 

 

  한미FTA 협상의 타결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협상 결과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부에 의해 우리측 성과로 주장되는 것은 부풀려진 것이거나 실효성이 적은 반면 미국에 내줘야 할 것은 알려진 것보다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앞으로 협상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이 대거 드러날 경우 여론의 향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규제정책도 ‘투자자-국가소송’ 대상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부동산 정책은 '투자자-국가소송' 대상에 포함되지 않도록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한미FTA 타결 보도자료’에서 “간접수용의 판정 기준을 명확히 제공하고, 공중보건, 환경, 안전, 부동산 가격안정화정책 등 정당한 정부정책은 원칙적으로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을 명시함으로써 정당한 정부규제 권한을 확보하였고, 조세정책은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이번 협상에서 부동산 규제 정책이 투자자-국가소송 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고 있다. 심 의원의 주장은 정부의 공식 발표문을 재해석해 유추해낸 결과다. 심 의원은 “부동산 가격안정화정책 등 정당한 정부정책은 원칙적으로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이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이를 뒤집으면 “부동산 가격안정화 정책 이외의 모든 부동산 정책은 투자자-국가 소송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심 의원의 추정이다.

 

  금리정책을 통해 부동산 정책을 펴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여러 공적 규제를 통해 부동산 정책을 수행한다. 예컨데 조림제도, 도시계획제도, 부담금제도 등이 공적 규제에 해당한다. 이번 협상을 통해 이런 정책들에 대해 시비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게 심 의원의 판단이다. 심 의원은 “간접 수용이 규제적 수용까지 포함한다면 엄청난 소송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며 “건교부가 규제 정책을 수립하면서 소송을 피하기 위해선 부동산 소유자에게 막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 자본주의화 할 때까지 역외 가공지역 인정 않겠다는 것


  이번 협상에서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설치키로 한 것도 주요 성과로 홍보하고 있다.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경협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게 정부 측 평가다. 이와 관련,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4일 국회 통외통위에 출석해 “(개성공단에 대한) 역외가공이라는 개념을 미국이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국회 한미FTA 열린우리당측 간사인 송영길 의원은 좀 더 나간다. 그는 3일 “개성을 넘어서 북한영토 전체를 대상으로 한 근거 규정을 만든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높다”면서 “동북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통일 민족경제의 꿈을 이룰 토대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 직계 라인에는 통일론 차원에서 한미FTA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이런 논리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8월 정국에는 통일담론으로 갈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은 개방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상황 논리”(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라는 전망과 결부해 보면 전략적 의미가 한층 분명해진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미측의 태도는 한국 정부의 기대와는 한참 다르다. 카란 바티아 미국통상교섭대표부(USTR) 부대표는 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은 현재 한미FTA의 적용을 받지 않게 돼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 원산지 인정은 FTA 협정 발효 1년 뒤 매년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열어 노동환경 기준 충족 여부 등을 심사해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바티아 부대표가 말한 ‘노동환경 기준’에 대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4일 국회 통외통위에서 “미국의 노동기준은 ILO 기준이며, 결국 노동3권이 핵심”이라며 “만일 노동기준이 ILO 기준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북한이 자본주의화 할 때까지 역외 가공지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득보다 실이 큰 자동차 분야 협상


  자동차 분야의 협상 성과도 턱없이 부풀려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한국산 승용차에 매기던 2.5%의 수입관세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미측은 자국 자동차업계의 오랜 숙원이던 특소세 인하 및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제 폐지를 우리 정부로부터 따냈다. 이로 인한 국내 세수 감소분만 연 4천억 원으로 추정된다.


  미국 측의 관세 인하로 국산차의 가격경쟁력이 상승할 것이라는 게 정부 측 논리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5일 지난해 2월 발표된 자동차공업협회의 자료를 인용, “미국 승용차 수입관세 2.5%를 폐지해도 대미수출 가격은 2.4% 인하 효과밖에 없으며, 현대차에서 미국 현지공장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관세 인하에 따른 수출 증가효과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미국차 또는 미국산 일본차의 수입증가율이 더욱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커 결국 손익을 따져보면 이번 협상결과는 밑지는 장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 않으면 협정 비준 않겠다”


  당초 한미FTA 의제가 아니었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개방 문제도 이번 협상 타결 과정에서 미측에 대폭 양보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2일 대국민 담화에서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를 통해 한국은 성실히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점, 협상에 있어서 국제수역사무국의 권고를 존중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합의에 따르는 절차를 합리적인 기간안에 마무리할 것이라는 점을 약속으로 확인해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미측은 보다 분명한 수입 개방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개방하지 않을 경우 최근 타결된 한국과의 FTA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숀 스파이서 미 무역대표부(USTR) 대변인은 4일 USTR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쇠고기에 대한 명백한 통로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카란 바티아 USTR 부대표도 “광우병 문제가 FTA 협상 틀 밖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한국은 국제적인 기준을 존중해야 한다”며 “한국이 쇠고기시장을 완전 재개방하지 않으면 의회에서 비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국 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숨겨진 독소조항’ 속출 가능성


  이밖에 우리측은 유전자조작생물체(LMO)에 대한 위생검역절차를 미국의 요구대로 간소화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별도의 합의문을 작성할 계획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숨겨진 독소조항’은 협상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속출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정부의 공식 발표만 놓고 보면 우리 정부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협상을 잘했다”면서 “(미측에) 밀린 것은 빼고 따낸 것만 강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짐작했다. (정제혁 기자/레디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