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심리학자가 ‘말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두 개의 화분에 같은 종류의 식물을 심고, 동일한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두 화분 모두 양지 바른 곳에 놓아두었고, 적당한 때에 주기적으로 물과 양분을 공급해주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조건만은 달리했다. 'ㄱ 화분'에는 늘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려주었고, 'ㄴ화분'에는 핀잔과 꾸중의 말을 들려주었다.
“넌 꼭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야.”
“넌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모를 거야. 넌 정말 근사해.”
“아예 말라죽어라. 그것도 이파리라구, 달고 사냐!”
“너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져 죽겠다. 옆집 나무 좀 봐라. 넌 왜 그 모양이냐?”
ㄱ 화분은 그 말처럼 좋은 열매를 맺고, 아름답게 자랐다. 아울러 ㄴ 화분 역시 그 말처럼 되었다. 식물도 말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농민운동 하는 분들로부터 ‘정성을 다해 키운 작물은 건강하고 잘 자라고, 내팽개치고 험한 소리 퍼부은 작물은 엉망이더라’는 말을 직접들은 적도 있다. 하물며 사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말이란 그저 내뱉고 나면 사라지는 한낱 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말의 이 특성을 과소 평가한 것이다. 말이란, 그것을 듣는 사람의 정서와 결합하면서 감정을 만들어내고, 감정은 행동의 동력이 된다. 그리고 행동이 되풀이되면 그게 바로 습관이 된다. 습관이란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다.
성서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도 혀이고, 가장 사악한 것도 혀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장 존귀한 혀는 긍정적인 말로 희망을 파생시키지만, 가장 사악한 혀는 부정적인 말로 파멸을 불러온다. 한 사람의 영혼엔 선과 악이, 희망과 절망이 모두 존재한다. 긍정적인 말을 지속적으로 들은 사람은 선과 희망을 품게 되지만, 부정적인 말에 사로잡힌 사람은 악과 절망의 포로가 되기 쉽다. 말로 인해 상처받거나 위로 받는 데는 남녀노소가 없다.
조직 활동이란 게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일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감정이 상할 때가 더러 있기 마련이다. “사람을 보고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앞에 보이고 부딪치는 게 사람인데 사람을 보지 말라고 한다면 어패가 있는 것이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의사를 고집스레 관철하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부정적이고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은 피하고 긍정적이고 즐거운 말을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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