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국가이익을 위해서?

녹색세상 2007. 4. 4. 00:58

   이익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롭고 도움이 되는 일, 물질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이익을 위해 온갖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은 예나지금이나 흔하다. 오죽 했으면 ‘권력과 돈 앞에는 부모 자식도 없다’고 하겠는가? 어쩌면 이익이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이 부분에 있어 나도 예외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이익을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생명을 걸어 놓고 흥정을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워낙 집단의식이 강한 탓에) 우리 사회는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전체를 위해’라는 말을 갖다 붙인다. 그 말 속에는 소수자는 없어져도 괜찮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국가 이익을 위해 우리 자식 같은 젊은이들을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터로 보내는 것에 박수를 치는 무리들이 있다. 정말 그렇다면 자기 아들이나 조카들부터 먼저 보내 놓고 그런 말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찬성을 한 국회의원들이나 고위 관료와 재벌들의 아들은 단 한 명도 가지 않았다는 것이 국회 대정부 질의 자료에 나와 있다. 그들이 거품 물고 떠든 국가 이익이란 것이 사기임이 드러났다. 그러면 무엇이 그 인간들이 그렇게 핏대 세워가며 외치는 국가이익이란 말인가? 부모가 되어 자식을 사지로 내 몰아서까지 집안의 이익을 챙기는 게 할 짓인가? 난 자식을 키우는 애비로서, 내 품에서 자란 조카들을 그런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 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다.

 


    젊은 생명들을 희생시켜가며 얻는 이익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 보다 약한 사람들을 짓밟아 가며 생긴 이익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안 보이지만 그래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놀릴 수 없어 허리 휘어가며 땀 흘리는 농민들을 희생시켜 재벌의 배를 채우는 게 국가이익이라면 난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인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짓밟아 가며 이익을 얻어야 한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경쟁 없는 세상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인과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은 있어야 세상이 굴러가지만 남을 짓밟고 죽여 가면서 하지 말자는 것이다.


  복지제도가 가장 잘 발달된 스웨덴의 경우 가벼운 장애를 가졌다 할지라도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국가는 임대 주택을 제공하고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뿐만 아니라 실업급여는 평균 임금의 80퍼센트에 달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일을 안 한다고 오해 하지 마라. 노후에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국가이익’을 들먹이며 우리 젊은이들을 미국의 석유자본과 군산복합체의 뱃가죽에 기름기 채우는 일에 총알받이로 보내서는 안 된다. 정녕 국가이익을 고민한다면 미국 보다 더 넓고 개척의 여지가 많은 아랍 진영과 관계 개선을 해야지 왜 그들의 아픈 가슴에 비수를 들이댄단 말인가? ‘남의 눈에 눈물 흘리면 내 눈에 피눈물 난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남 괴롭혀 가면서 이익을 챙기는 야비한 짓은 하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