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11일 수술을 한 좌측 무릎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창원지사의 자문의사가 혼자 판단하기 힘들다며 ‘자문의협의회’로 넘겼다. 지역본부가 있는 곳과는 달리 매주 열리지 않고 2주 만에 열려 한 번 놓치면 2주를 기다려야 한다. 사고를 당한 환자의 입장에서 그 시간은 스트레스의 연속일 뿐 제대로 활용할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다. 재해 조사도 산재환자의 거주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관할 지사로 직접 가서 해야 해 불편하기 그지없다. 캐나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동포에게 국내의 이런 사정을 말했더니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설 전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참석할 여건이 못 되어 미루다 보니 최초요양신청서를 접수한지 50일이나 지났다. 민사소송을 하거나 형사소송을 하는 것도 아닌데 다친 것에 대한 정황 자료와 증거 확보를 당사자가 해야 하니 외부의 요인에 의해 다친 산재환자로서는 더 머리가 복잡해진다. 자문의협의회에 참석을 기다리는 산재환자들의 얼굴이 하나 같이 어둡기 그지없다. 사고를 치고 처분을 기다리는 죄인 같은 모습이다. 의사들의 글 몇 줄로 운명이 바뀌니 당연하다. 산업재해보상 보험법에 명시된 대로 정당하게 의료와 기타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고객임에 분명한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민원인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야 많이 친절하지만 복지의 내용은 허술한 게 아니라 악랄하기 그지없다. 방향을 미리 정해 놓고 짜 맞추기 식으로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골치 아픈 인간이라 그런지 가장 늦은 시간에 잡혀 있었다. (할 말이 많기도 하고) 준비한 산재관련 법원 판례와 현장의 위험한 곳을 찍은 것을 출력해 제출했다. ‘의학자문’을 하는 것이라 다른 것은 모른다고 하니 내가 하는 일이 사고 부위에 무리가 가는지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니 악몽을 떠 올리는 것이라 정말 피곤했다. 수술 전 관절 내시경을 통해 찍은 놓은 사진을 보고 집도의사와 견해가 다를 수 있다며 정확한 판단을 위해 상의를 해야 한다고 하니 더 갑갑했다. 그냥 편하게 치료만 받아야 할 재해자가 장기간 처리를 기다리는 현실, 이러니 치료가 늦어지고 현업 복귀가 지연되어 비용은 더 많이 지출되는 현실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불편한 몸으로 무거운 연장 가방을 가지고 갔다. 재해 조사 때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설명을 해야 하니 그 무거운 것을 가지고 갈 수 밖에. 한 자문의가 들어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작업을 할 때 못을 가득 넣거나 하면 더 무거운데 그걸 무겁다고 하니..... 그나마 떠들고 싸운 전력이 있고 아직도 소송 중에 있어서 그런지 30분 넘게 시간이 주어졌다. 건설노동자들이 각종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앓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기에 “얼마 전 사망한 베트남 이주노동자에 대한 산재 처리가 자문의협의회에서 인정한 사례가 있는데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전향적인 판단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립서비스를 한 후 “내 재해에 대해 판단하기 어려우면 여기서 끝내지 말고 특진이란 제도가 있으니 3차 진료기관에 보내 정밀하게 검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왔다. 지방도시라 그런지 젊은 의사들이 더 많고, (결과야 알 수 없지만) 몇 번이다 묻는 등 10여 명이 넘어도 두세 명만 묻는 대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대구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가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언제 우리는 ‘찾아오는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절망적인 현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사고를 당했으니 치료에 전념하는 게 분명하건만 재해자가 일일이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정말 싫다. 이런 세상에 살기 위해 피땀 흘려가며 청춘을 날려 보낸 게 아닌데...... 지금과 같은 겉만 번지르 하고 알맹이는 없는 현실을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준다면 나 역시 청년시절 그렇게도 원망하고 욕했던 ‘못난 조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 ‘그 날은 오리라’는 믿음만은 버리지 말자.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장난치고 사기 치는 인간들을 용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전례가 없다’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싸울 수 밖에 없다. 암울하기 그지없는 이 현실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지만 절망 하지는 말자. 눈물 흘리는 것은 나 혼자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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