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보라야, 그 동안 잘 지냈니? 어릴 때 삼촌이 안고 있으면 울음을 그치던 네가 벌써 대학을 졸업하는구나. 청년 실업이 심각한 세태라 축하를 해도 될지 말아야 할지 갑갑하기만 하구나. 갓난아기인 해린이도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간단다. 먹고 사는 게 정신이 없어 이 땅의 청년학생인 너와 삶의 문제를 갖고 대화한번 못하고 시간을 보내고 말았구나. 부모 뻘 된 자로서 볼 면목이 없다. 나이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라 어른 구실을 해야 어른 대접을 받는데..... 너희 자매를 볼 때 마다 너무나 많은 죄를 지어 뭐라 사죄를 빌어야할지 모르겠다 보라야.
무엇보다 힘든 가운데도 너희들을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이신 형수께도 너무 죄송하고. 해린이가 돌이 되었을 무렵 ‘큰 엄마 노릇 못해 미안하다’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너희 조부모가 집안 재산에 욕심을 내는 바람에 ‘도둑놈들과는 상종 안 한다’는 내 고집 때문에 너희들 얼굴 못 본지도 오래되었구나.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욕심이 너무 과해 집안 재산마저 꿀꺽한 그 분들을 내가 살아 있는 한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구나 보라야. 당장이라도 집안 재산으로 내 놓으면 찾아가 ‘무례함을 용서하시라’고 무릎 꿇고 빌 용의가 있다만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너와 언니인 정민이가 장성하면서 성인이 되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서로 대화도 하고, 이 땅에서 희망을 찾고 비빌 언덕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같이 해 보는 게 이 숙부의 바램이었는데 말로만 하고 말았구나. 시간을 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을러 그러지 못했으니 너희들에게 할 말이 없구나. 너희들 같은 청년 시절에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고 피눈물 흘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갈수록 살기 힘든 현실이 주어져 더욱 할 말이 없고. 해린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도 문제 해결이 될지 의문이라 정말 이 땅에서 발붙이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구나. 무엇보다 청년들이 일 할 수 없으니 더 갑갑하기만 하구나. 겨우 얻은 일자리라는 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니.....
경제 규모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나라이건만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기 그지없고, 미국 중심의 질서 재편인 신자유주의 물결에 편승하지 못해 안달이 난 권력과 자본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니 분통이 터지는 것은 비단 나 뿐이 아니겠지만.... 곳곳에 미국 중심의 체계에 대한 문제가 노출되고 균열이 가고 있건만 ‘오직 미국’만 떠들어 대는 무리들이 판을 치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 너무 원망스럽구나 보라야.
솔직히 말해 ‘이 땅에서 희망을 만들어 가자’고 말한 자신이 자꾸만 없어져 가니 자식같은 너희들을 볼 낯이 없어. 그러나 어둠이 깊을수록 해 뜨는 새벽이 가까워 오는 법이니 희망만은 잃지 말고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갈수록 빈부 격차는 심해져 이젠 없는 집 자식을 아무리 날고뛰어도 대학 구경하기 힘들어 가니 막막하기만 하다. 청년 시절 피눈물 흘리며 싸울 때 ‘우리 자식들은 돈 걱정 없이 공부하고, 아프면 병원 가기만 하면 되는 세상’에 살줄 알았는데.....
해린이와 너희들 보기 너무 미안 하구나 보라야. 그렇지만 미국의 앞마당이었던 남미가 홀로서기를 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갖지 않을 수 없단다. 영원할 줄 알았던 로마도 망했는데 그까짓 미국도 끝이 분명히 있지 않겠니? 아무리 절망적이긴 하지만 희망을 만들어 가면서 살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구나 보라야. 보라야, 네 언니인 정민이와 딸 해린이를 정말 사랑한다. 너희들이 있기에 결코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마. 건강하고 좋은 일 많이 만들도록 하자꾸나. 사랑한다 우리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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