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칼이나 일본도는 한쪽 날만 있지만 서양검과 우리 검은 양날이 있습니다. 한 쪽의 날만 있는 칼의 경우 상대를 향해 마구 휘둘러도 자기 칼에 다칠 염려는 적으나 양날 검의 경우 잘 쓰면 양쪽으로 상대의 목을 벨 수 있으나 자칫 잘못하면 한 날이 자신에게 올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양날 검을 사용하려면 고도의 무예를 연마하고 정말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민주노동당의 오랜 활동가들은 총론에는 매우 강하나 각론에 들어가면 막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무식하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방송대 행정학과에 늦게 편입을 했습니다. 최소한 행정의 기본 개념은 파악하고 있어야 관료들과 맞짱을 뜨고 할 말이 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판단에 결심을 했습니다.
사회생활이라는 밥벌이와 당 활동이라는 양날 검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어슬프게 칼을 휘두르다가는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죠. 많은 활동가들이 자신의 목숨만은 안전한 외날 칼을 쥐고 싸우고 있습니다. 자신이 휘두른 칼에 자기 목이 날아 갈 염려는 없는 셈이죠. 예민한 사안이 생기면 뒷말은 무성하나 생산적인 방향으로 논쟁의 물꼬를 트는 데는 매우 인색함을 보면서 ‘이럴 수 있느냐’는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입당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주제에 이런 평가를 하긴 뭐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관성화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서서히 우리 몸에 스며든 관성이란 비는 온 몸을 젖게 했는지 모릅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조직에 대한 문제 제기만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일 것입니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불후의 명저 역사와 해석 서문에서 “우린 성서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한다. 성서가 자명한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우린 아집과 편견에 빠지고 만다”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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