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참혹한 위기에서 탈출하기

녹색세상 2006. 10. 11. 12:30

  핵실험을 통해 북한은 판을 바꿔버렸다. 이제 남은 문제는 북한의 핵을 해체시키고 북한의 추가적 행동을 막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핵무장한 북한과 공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가장 커다란 피해자는 다음 아닌 한반도의 민중일 것이며, 남한의 진보진영일 것이다.


한반도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을 건 위험한 도박


  핵무기를 통한 군사 안보는 결국 한반도에 거주하는 7000만 민중의 삶을 볼모로 하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와 압력에 대항한 자위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이 열어놓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치 군사적 대립국면은 한반도 전체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며, 필경 평양 지도부 역시 파괴적 결과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체제안보를 위한 핵무기는 결코 경제적 고난에 처해있는 2000만 북한 민중의 고통을 거두어주지 못한다. 체제의 정당성을 재생산하지 못하는 위기 상황에서 군부를 앞세운 선군정치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민중의 생존은 덜 중요한 것이 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잃는 것이 없다고 할 때, 주로 미국의 군사 공격 가능성이 적고, 체제 내구력이 존재하며, 중국이 최소한의 지원을 할 것이라는 손익계산이 거론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인식은 역으로 북한이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저버리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공존의 질서를 저버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타자화되고 있는 한반도의 운명, 그리고 거대한 균열조짐을 보이는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는 북한이 공히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북한이 강조하는 자주는 결국 한반도의 타자화로 귀결되고, 북한이 강조하는 평화는 결국 핵무장론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지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의 위기 상황에서 진보의 일각과 보수의 일각은 매우 비슷한 주장들을 하고 있다. 북한의 핵주권을 옹호하는 진보의 주장과 북한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보수의 주장은 일맥상통한다. 북한의 핵보유를 옹호하기 위해 비핵화 폐기를 주장하는 진보와 북한의 핵보유를 핵으로 응징하기 위해 비핵화 폐기를 주장하는 보수의 입장은 너무나 비슷하다. 진보진영의 입장은 분명해야 한다. 요동치는 정세는 분명한 입장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를 반대하며, 한반도 비핵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의 핵보유를 찬성하거나, 혹은 미국에 대한 비판으로 에둘러 북한의 핵보유를 지지하는 입장은 이제 수용될 수 없다.


     북한의 추가행동을 막아야 한다


  북한은 이제 미국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핵보유국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체제안보를 보장받으려 하였던 북한의 전략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명백한 실패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의 악의적 무시와 제재 일변도의 정책은 당장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제재와 압력을 통해 북한의 항복을 이끌어내려고 하여왔다. 변환외교라는 말로 포장되는 이 전략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의 시선을 끌어내기 위한 위기 고조 전략을 포기하지 않아 왔다. 과연 북한 지도부가 미국의 변화된 전략과 국제환경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여전히 94년 1차 핵 위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북한 지도부의 판단과 전략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화와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북한은 현 상황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은 추가적 핵실험을 언급하고 있다. 협상의 목적이건 군사적 목적이건 보다 확실한 자위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및 미사일 기술의 개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관건은 핵탄두의 소형화 및 탑재 미사일의 사정거리 연장(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선제공격을 응징할 수 있는 제2격 능력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옵션들이 필요한 것이다.


   과연 북한의 기술 수준이 어느 단계인지는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핵탄두의 소형화와 미사일 사정거리의 연장은 짧은 시일 내에 달성되기 어려우며, 추가적인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므로 북한은 앞으로도 기술적 개량을 목적으로 미사일 발사 실험과 핵실험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으로선 그것이 협상카드이자 군사카드일 것이다. 북한이 만약 그러한 행동으로 나아간다면 한반도는 이제 무력충돌과 총력전의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한국과 한국의 진보진영은 그것에 단호히 경고해야 한다. 핵기술의 개량과 미사일 능력의 개량은 남북관계의 파국적 상황을 초래할 것이며, 한반도 주민의 생존을 벼랑 끝으로 내몰 것임을 경고해야 한다. 나아가 그 후과는 오판을 한 평양의 지도부에게도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진보진영은 미국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도 반대해야 하며, 북한이 벌일 수 있는 추가적 행동에 대해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는 미국의 전략 실패의 결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이 실패하였다는 주장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 북한의 핵실험은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 실패라기보다는 미국의 대북정책의 실패이다. 보수진영은 북한의 핵실험의 원인 제공자가 미국이며, 북한의 핵보유 억지를 약속했던 미국의 전략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보유로 이어진 것을 경시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민주당이나 언론들은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이 북한의 핵보유를 낳았다며 거센 비판을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이란 역시 북한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부시의 비판자들은 부시 정부가 북한 핵보유로 얻을 것에 지나치게 매몰되었다고 본다.


  이를테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상황에서는 남북관계의 단절이 불가피해지며, 남한의 대미 종속성이 강화되며, 일본의 보통 국가화 및 한미일 동맹의 통합화가 강화되며, 북중관계가 냉랭해지며, 미사일방어체제(MD)의 정당성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는 미국의 패권을 강화시키며, 중국의 부상을 교란하고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억제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부시 정부는 북한의 핵야망을 분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핵을 개발하려는 세계 여러 나라들을 자극하였으며, 미국의 핵 패권체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만약 북한이 미국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핵 능력을 보유한다면, 미국은 치명적인 상황에 봉착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분명하다. 제재와 압박을 통한 문제 해결의 방법에 있다. 부시 정권은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 야망을 자극하였다. 미국은 지금까지의 제재와 압박을 통한 해결 방법으로는 북한의 핵보유와 북한의 추가적인 핵 개발을 저지할 수 없다는 냉정한 상황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시간은 북한을 더욱 더 괴롭히겠지만, 미국 역시 원하지 않는 상황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이 재삼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이 설혹 대북 제재를 강화한다 해도 북한이 입을 피해는 파괴적이지 않다. 미국은 북한의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위기 상황이 커진 만큼 대화와 협상에 나서는 길이다. 북한의 핵 해체가 목표라면 부가적인 전술수단들의 변경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대북포용정책 폐기는 섣부른 행동


  보수세력뿐만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대북 포용정책의 전면적 재검토 혹은 폐기의 논의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이 대북 포용정책에 있다는 분석은 일면적이며 단순한 것이다. 대북 포용정책이 안고 있는 (신)기능주의적 한계로 인해, 남북 사이의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경제협력이 자연스럽게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대북 포용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첫째,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의 규정력이다. 북한과 미국의 갈등 게임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 자체가 제약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대북 정책을 재평가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점을 본다면 대북 포용정책은 위기의 악순환 과정에서도 남북관계를 파국적 상황으로 이끌지 않고 남한 정부의 조율된 대응을 이끄는 토대였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둘째,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남북교류협력은 단순히 북한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남한을 위해서도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개발이 북한의 주요한 경화 결제원이지만 동시에 한국의 필요에 따른 측면도 매우 크다.


  셋째, 과연 노무현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는가를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대북 정책에서도 일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때로는 미국에 때로는, 북한에 친근한 메시지를 보내온 노무현 정부의 혼란스런 메시지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 포용정책이 어려워졌다고 언급하였다. 능력의 실패를 정책의 실패로 돌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오히려 진보진영이 지속적으로 강조하였던 ' 북협력을 중심으로 한 핵문제의 해결'에 노무현 정부가 전향적으로 임했던들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회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폐기하고 남북 대결정책을 벌인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은 남한의 제재를 핵능력 개발의 명분으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대북 핵 정책과 대북 정책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 평화공존 질서 형성과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을 위한 전략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되, 현재의 위기상황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북미 양자가 각자의 전략 실패를 인식하고 대화와 협상의 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모든 자원과 힘을 결집시켜야 하는 것이다.


      위기상황 관리에 모든 자원과 힘을 집중하자


  지금까지 핵능력을 해체한 사례는 우크라이나의 사례와 남아공의 사례가 있다. 두 방식 모두 제재와 대화와 협상이 병행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제재 일변도 정책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방식은 체제의 안전보장을 여러 국가가 국제적으로 보장하였으며, 남아공은 IAEA의 눈을 피해 소형 핵무기를 은닉하고 있다고 사후에 해체하였던 경험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핵능력의 해체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그 해체에는 체제 보장과 해체의 투명성을 보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지금 노무현 정부와 보수세력은 대북 제재의 동참을 둘러싼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일단 제재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전략적 오판과 미국의 전략적 실패가 명백한 상황에서 국제여론은 마냥 미국편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공개적인 경고와 반대를 표명하면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밖에 국제사회의 여론이 반드시 미국편이 아니라는 점은 북한의 핵실험을 보도한 각 국의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율성이 심각하게 위축된 한국이라 해도 참혹한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더욱 더 절실한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 방향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군사적 행동 및 추가 행동 반대,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 준수이다. 이제 북한이 핵을 보유한 마당에 어떻게 북한의 핵을 해체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이를 위한 한국의 노력이 단지 정부의 노력만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부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북한과 미국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 더 이상 능력과 비전을 지니지 못한 정부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초당적으로, 거국적으로 모든 자원과 역량을 결집해야 하는 것이다.


  먼저, 한국은 대화와 협상의 여건을 조성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 방식은 북미 직접협상일수도, 6자 회담일수도 있다. 문제는 국제적 공조 노력 속에서 미국을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일단 한국은 UN 안보리에서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협력하여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제재가 아니라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의 원칙을 재확인해야 한다.


  대화와 협상을 경시하는 미국이라 해도 북한의 핵 해체는 분명 중대한 전략 목표이다. 한국은 북한의 핵 해체를 추진하기 위한 과정에서 미국의 개별적 전술과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그러한 행동이 미국의 거대전략과의 충돌이 아닌 이상, 한국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 존재한다. 또한 한국은 북한의 추가 행동에 대해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며, 미국 주도의 군사 행동 움직임에 대해서도 강력히 견제해야 한다. 미국의 확산방지구상의 실행, 주일·주한미군의 이동, 대규모 해상무력시위와 군사연습에 대해 자제와 상황 안정을 촉구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은 UN 무대를 비롯한 국제적 외교 노력 과정에서 남북 직접 대화의 통로를 개척하기 위한 작업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서 반기문 UN 사무총장 내정자의 역할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 것인지,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국회가 어떻게 국제여론 형성을 위해 움직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사 파견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응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국회의 행동이 특히 중요하다. 결의안을 채택하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직접 국제무대를 돌며 여론 형성 작업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 진보진영 역시 북한의 핵실험이 초래한 무기력한 상황을 극복하고 대중적인 평화 행동을 조직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을 반대하고 대북 군사제재를 반대하며 한반도 평화 실현을 염원하는 대중의 목소리를 관련국에, 그리고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에게 안심하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이 안심하려면 정확한 상황인식에 토대를 두고 초당적이고 거국적인 노력이 이뤄질 때이다. 결단이 늦을수록 위기상황은 관리하기 어려운 길로 나아갈 것이다.     

                       (2006. 10. 10. 진보정치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