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국 상원 군사전문위원 아무개씨는 다음 전쟁 후보지로 다시 한국이 유망시된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이기를 '이번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핵전쟁을 회피할 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무서운 이야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정한 시인이 있다면 '말씀'해야 한다, … 피맺힌 언어로, 창자 터지는 노래로."1967년 10월, 신동엽 시인이 한 일간지에 게재한 글의 일부다. 놀라운 사실은 39년 전에도 한반도의 핵전쟁 가능성은 현실의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6.25전쟁 초기 맥아더 사령관이 동해에서 서해까지 방사능 코발트 벨트를 형성하기 위해 26개의 핵폭탄 사용권을 요청한 사실을 상기하면 새롭진 않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4월 핵무기 투하 명령에 서명까지 했었다. 이후 지금까지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다'는 미국의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북한이 두려워한 것은 바로 이 핵공격이었다. 이에 대한 북한의 선택은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이었다. 경제위기도 이를 부추겼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남한의 1/30에 불과했고, 군사비는 1/5에 불과했다. 재래식 군비경쟁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남쪽엔 미군의 첨단무기도 가득했다. 핵무기는 이에 맞서는 가장 저렴한 수단이었다.
북의 공격성을 거론할 때 매번 나오는 게 휴전선 서부전선에 집중 배치된 장사정포다. 시간당 7000발을 서울과 수도권에 쏟아 부을 수 있고, 화학탄까지 탑재할 수 있으니 대단한 위협이다. 그러나 장사정포의 최전선 배치야말로 북한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 장사정포는 적군의 최전방 지휘부나 통신 화력을 무력화하는 무기다. 그런 무기를 즉각 역습이 가능한 최전선에 배치하는 건 바보짓이다. 안전지대에 배치해야 한다. 수도권에 대한 위협을 통해 남쪽의 선제공격을 억지하려는 북한의 고육책인 것이다.
베트남전을 수행했던 미국의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은 회고록에서 북베트남의 의도와 목적을 간과했던 게 미국의 가장 큰 실수였다고 말했다. 한반도 남쪽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핵무기를 두고, 그것이 공격용이냐 억지용이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할지 모른다. 동북아에 핵경쟁을 유발하며,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몇 곱절 높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북한의 의도와 목적을 냉정하게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 불안과 공포야말로 잠재된 공격성을 자극해 과도한 대응을 유발하고, 더 큰 긴장과 충돌을 낳게 한다. 보복 차원의 제재와 전면적인 경협 중단은 그 실마리다.
평화를 위한 노력 역시 한층 더 가열돼야 한다. 핵무기로 무장한 조폭적 집단이 쟁투하는 형국에서 평화를 외치는 건 조롱받기 십상이다. 도대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절망감이 퍼지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의 실천적 지성 하워드 진은 1992년 한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세상은 온통 우울한 뉴스뿐인데, 선생은 어떻게 그렇게 낙관적일 수 있는가?" 사실 암울한 시기였다. 미국의 침략전쟁, 민주정부 전복공작은 계속됐고, 종교와 민족적 광기에 의한 인종학살은 더욱 확산되고 있었다. 하워드 진은 이듬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집필했다. 거기서 이렇게 답했다.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죽어간 이들, 지금도 노력하는 이들 앞에서 어떻게 절망할 수 있는가.
우리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겪은 식민지와 골육상잔, 폐허와 학살은 너무나 참혹했다. 우리에게 공멸을 선택할 권리란 없다. 오로지, 더 다부지게 '창자 터지는 노래'로 평화를 말해야 할 뿐. (한겨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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