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오지랖이 넓은 어느 대학교수가 정확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유독 우리 사회에는 어느 곳 할 것 없이 ‘침묵의 카르텔’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이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비리’라고 할지라도 외부로부터의 고발이 있기 전에는 여간해서는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최근 일어난 일부 대기업 노조의 비리 사건과 자신이 속한 정파의 구성원의 잘못을 대하는 일부 당원들의 자세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들의 처지에서는 조직 내 구성원의 문제를 거론하는 행위 자체가 귀찮아서이기도 하지만, “괜히 나섰다가 자신에게 괜한 불이익이 올 수도 있겠다.”는 우려 때문일 것입니다. 대충 눈치껏 중간만 가면 탈 없이 지낼 수 있다는 처세의 ‘경험법칙’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죠. 우리 사회에서 두루 통용되는 변명 중의 한 가지인 ‘관행’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굳어진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요동치게 한 ‘급식 비리’도, 교사들의 ‘체벌 문제’ 또한 이러한 분위기와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관행을 깨는 것은 기존의 일하는 방식, 나아가 인식하는 틀 자체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므로 심신이 불편함(?)을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웬만해서는 꿈적이지 않는 철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 민주노동당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봅니다.
시장 선거와 관련해 제가 글을 몇 자 적을 때 엄청난 고민을 하면서 목회를 하는 선배와 상의를 했습니다. 선배의 말은 딱 한 마디, “너는 어느 정파에도 속해있지 않은 민주노동당파 아니냐. 성서에서 말하는 헤브라이인이란 것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이란 뜻이다. 어떤 정파에 속해 있으면 말이라도 꺼낼 수 있겠느냐?”면서 머뭇거리지 말고 소신껏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통합과 인화단결을 부르짖는 ‘한 목소리’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 결코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는 비아냥거림만큼은 정말이지 벗어나 우리 내부의 도덕적 잣대를 명확히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민주노동당 마저 그렇게 “침묵의 카르텔” 대열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대중들은 우리를 향해 온갖 비난을 쏟아 놓을 것이며, 우린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삶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시민 장관, 당신의 기회주의가 슬픕니다"(2) (0) | 2006.10.20 |
---|---|
사랑하는 형수에게. (0) | 2006.10.09 |
공정해야 하는 도덕적 잣대 (0) | 2006.10.08 |
추억 여행을 다녀보십니까? (0) | 2006.10.07 |
16년 만에 만난 옛 사랑 (0) | 2006.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