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추억 여행을 다녀보십니까?

녹색세상 2006. 10. 7. 20:01

 추억 여행을 다녀보십니까?
 모 대학에서 상담심리를 강의하고 있는 친구가 “갑갑하거나 우울한 마음이 오래갈 때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해서 요즘 때 아닌 추억 여행을 가끔 다니곤 한답니다. 고등학교는 신설학교였는데 주변에 집이 별로 없을 정도였으니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입니다. 어린 마음에 방황을 했는데 2학년 때 전근을 오신 독어 선생님이 그런 저를 많이 잡아 주셨습니다. 선생님 댁이 신남 네거리 부근이었는데 하교 길 차가 잘 없으면 7호 광장에서 그까지 같이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추억이 간혹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선생님 따님이 얼굴도 잘 생기고 성격도 좋은 우리보다 한 살 아래라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따님을 보러 더러 놀러 가곤 했습니다. (20대 중반이 넘어 자수를 했습니다. ^^) 어느 날 저를 따로 부르시더니 “희용아, 정치·사회 쪽으로 공부를 하려면 독어를 해 놓는 게 좋을 거다. 특히 신학 쪽은 독일이 뿌리가 깊고 하니 잘 생각해 보라”며 자식 같은 제게 많은 힘을 주곤 하셨습니다. 공부 안 하는 무식한 먹사들 깨려고 신학 학습 할 때는 선생님 말씀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더군요. 외국어가 짧은 탓에 인용 부분을 이해하려면 몇 시간이 걸려 정말 후회 많이 했습니다.

 

제게 좋았던 시절은 중학교 때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유일한 남녀공학학교에다 국립학교인 경대사대부중이라 교육 여건이 다른 학교에 비해 참 좋았습니다.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들이 참 인격자들인데다 경우가 바른 분들이라 좋은 걸 많이 배웠습니다. 선생님들께 전화를 해 “제가 중학교 시절에 어떠했습니까?”라고 여쭈어 봤더니 가정 방문 간 것까지 기억을 떠올리며 “집안이 부유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는데 자네 어른 얼굴이 참 밝았고, 자네는 어른들을 보면 전혀 피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고 하시더군요.

 

요즘 말로 범생이 과에 속하는 편이었던지라 “가끔 당돌하게 군 적은 없었느냐”고 여쭈었더니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건의사항 같은 걸 당당하게 하던 기억이 난다”고 하신 걸 보니 반골 기질은 그 때부터 있었나 봅니다.^^ 70년대 초반 그 살벌하던 시절 교사와 학생 간에 거리가 엄청나게 멀기만 했는데 어린 녀석의 고집을 너그럽게 받아 주셨기에 가능했지 관계가 살벌하기만 했더라면 불가능했죠.

 

올해 1월이 졸업 30년이라 사은회 하기 전에 미리 얼굴을 뵙고 상견례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 작년에 몇 차례 나누어 선생님들을 모셨는데 집행부들이 ‘그 선생님 소식’하면서 제 얼굴만 쳐다 볼 정도였으니 선생님들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았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학창시절부터 할 말은 다했는데 ‘건방지다’고 꾸짖지 않고 모두들 잘 봐 주셨죠.)

 

 

 

작년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와 개점휴업하고 있는데 당원들로부터 연락이 와 대낮부터 공장을 돌렸는데(?) 그 날 어머니처럼 저희들을 아껴 주신 여선생님들 뵈러 가야하는데 술이 좀 된 상태에서 ‘선생님 꽃다발 내가 가지고 간다’고 우겨 선생님께 드렸더니 ‘남자 제자한테 처음 받아보는 꽃다발’이라며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랐습니다. 그 꽃을 선생님은 사은회 하는 날까지 말려 보관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사실 그 날 기억이 토막이 났는데 나중에 자수를 했습니다.^^)

 

2학년 때 담임을 하셨던 사회과목을 가르친 선생님과 담임은 안 했지만 체육을 가르친 은사님을 만났는데 어느 친구가 “선생님, 희용이 저 놈 민주노동당 합니데이”라고 하자 “선생님으로부터 사회를 너무 잘 배워 하고 있습니다”고 했더니 “아냐, 내가 사회 선생으로 말하는데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우파 정당만 있는 사회는 발전이 안 되. 진보정당이 있어야 된다.”며 40대 중반을 넘은 제자를 격려해 주신 정말 은사님이라고 부르는 분들 밑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냈으니 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공중전 겪은 제 사정을 어떻게 아셨는지 “좋은 짝 만나 집안이 편해야 자네가 꿈꾸는 일도 신나고 재미있게 할 텐데”라며 격려도 수시로 해 주십니다. (안부 전화를 하자마자 “요즘 만나는 사람 없느냐? 생기면 얼굴 보여 주라”고 하셔 송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예전에 배운 분들이라 지난 시절 제대로 말 못한 것에 대해 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갖고 계신 분들도 있고요.

 

경우가 바르다 못해 예절에 어긋나면 불호령이 떨어진 아버지, 지식만 아니라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신 은사님들 덕에 오늘까지 이 정도라도 사람노릇 하며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갈수록 살림살이가 힘들어 진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것입니다. 저 역시 올 봄을 전후해 자리 이동을 몇 번하면서 수입이 확 줄어 최근에 이렇게 힘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노후에 대한 보장이 확실한 것도 아닌지라 갑갑한 게 사실이죠. 그렇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들 보다 더 힘들게 먹을 것 못 먹어가면서 자식들을 키우지 않았습니까? 한 방에서 사 남매가 같이 자면서 큰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지치거나 의욕이 떨어질 때 추억 여행을 떠날 볼 것을 권합니다. 돈 한 푼 안 들고 공상에 빠져 좋은 생각한다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추억 여행 지금 당장 떠나 보시죠. 정말 재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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