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보안사를 아십니까?

녹색세상 2006. 10. 3. 20:40
  

 요즘 대학생들에게 ‘보안사를 아느냐’고 물으면 ‘무슨 절인데요?’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 재일 교포인 김 병 진 선생이 모국에 유학을 왔다가 군사정권 시절 각종 공작정치로 악명을 떨친 ‘국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 프락치 공작 강요를 받고 그 곳에서 보고 들었던 내용을 일본으로 피신해 쓴 책의 제목이다. 그 당시만 해도 소령 정도만 되어도 이른바 ‘대공분실’의 책임자가 되어 출세에 눈이 어두운 인간들은 멀쩡한 사람들을 잡아가 고문해 ‘간첩’으로 만들곤 했다.


  그 책 가운데 나오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빙고 분실장으로 출세에 혈안이 된 ‘배 소령’이란 인물이 나온다. 당시 연배를 계산해 보니 중위 때 보안사령부에 차출되어 간 친구의 형이 바로 그 배 소령이었다. 청년시절 그것을 보고 몇 날 몇 일을 울었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 나도 군인이 되려 했는데 만일 군인이 되었다면 그런 짓을 하던지 강원도 골짜기를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시대가 너무 미웠다. 아무리 명령을 따르는 군대라고 하지만 친구 형이 각종 정치 공작과 조작 간첩 사건에 앞장섰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자신의 출세를 위해 온갖 짓을 앞장서서 한 장본인이지 끌려서 한 것이 아니라고 책에 분명히 적혀 있어 더 분노를 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철학의 기본 명제처럼 친구 녀석도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회사가 살아야 내가 산다’며 구사대를 이끌고 파업 대열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 선 사실을 지금도 자랑스레 얘기를 한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선생 못 된 게 장학사 한다”는 교직에 있는 친구 말처럼 그 녀석의 아내는 준교사 출신으로 장학사가 된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교장이나 장학관들에게 이른바 접대하는 것은 친구 녀석의 몫이었다. 세상 물정 어두운 선생 구워삶는 거야 식은 죽 먹기 아닌가! 부부 합작으로 정말 물 물 안 가리고 오직 ‘출세’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음을 여실히 보여줘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런 사람의 눈에 ‘아이들 교육’이 없음은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 아닌가.


  그런 일을 저지른 친구 형은 아직도 현역으로 보안사(현, 기무사)에 대령으로 근무 중이다. 과거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대목이 여기에도 남아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그런 인간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먹여 살릴 이유가 없을 텐데..... 한 잔하면 ‘빨갱이들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데 못 잡게 한다’며 조국의 적화를 걱정하는 자기 형의 말을 옮길 때 마다 “야 임마, 네 형이 군사독재 정권 하수인으로 간첩조작에 앞장 선 사실을 알고 나 있느냐”는 소리가 목까지 올라오는 걸 참느라 정말 애 많이 먹었다. 자기 형의 내막을 듣는다면 서로 얼굴 안 볼 각오해야 하는데 참 갑갑하기 그지없다. 하늘의 해를 손으로 가릴 수 없듯이 진실은 분명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