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표류하는 가정...... 가족이라는 뗏목

녹색세상 2006. 10. 3. 02:15

선선한 날씨가 계속 되더니 한낮은 여름을 방불케 해 요즘 옷 입기가 참 곤란하죠 ××씨. 새벽 첫 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요즘의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될지 정말 당황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자기 전 보던 일기예보를 최근 더 자주 보게 되네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겪으며 사는 사람들은 이 내용에 대해 많은 공감을 하리라 믿습니다. ××씨도 큰 아픔을 겪은 후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게 있다면 ‘자식들’이라고 바로 말하겠죠. 저 역시 방황하고 돌연사 길목도 갔다 오고, 자살이라는 극한 상황을 수 없이 헤맸을 때 헤어진 아들 녀석과 사랑스런 딸 해린이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스팔트 사이로 피어오르는 이름 모를 들풀을 보고 “내가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깨달으며 그 후론 자살이란 못난 단어를 지워 버리긴 했지만 그 깨달음도 아이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싱글이 돈 많이 모으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불행히도 통계 결과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있고 서로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부부가 있을 때 눈에 보이는 지출은 많을지 모르나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고, 삶의 절박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더 땀 흘리며 산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윤희용이 옆에 있었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이 통장에 모여 있을 것이고, 투쟁도 치열하게 할 수 있다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손님이 집에 북적 거린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겠죠.^^ 우리 가족과 후손들의 미래가 달린 일인데 대충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닐까요? 제 주변의 사람들이 하는 ‘세상을 바꾸려는 모든 노력’이 죽으려 하는 짓이 결코 아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좋아하고, 몇이라 할지라도 물불 안 가리는 것은 그런 연유죠. 그것은 내가 대단히 인도적이고 사랑이 많아서가 아니라 할머니 밑에서 자란지라 집에 늘 손님이 있어 부대끼며 서로 위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고, 팔레스틴 촌놈 예수의 명령인 “이웃을 사랑하는 게 하나님 사랑”이라는 영향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지만 현재는 나 자신이 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목숨 걸고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겠습니까?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 격차, 하루하루 달라지는 주머니 사정을 극복하고 많은 이웃들이 골고루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발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데 살려고 하는 짓을 더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죠. 저의 경우 집안이 안정되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더 열정적으로 살 것 같습니다.

 

애비란 게 하나 뿐인 자식 어른들에게 떠 맡겨 놓고 죄책감에 지내니 아동 심리학을 하는 누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낸 아이들이 사회성이 더 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고 하더군요. 신앙의 어머니 되는 어른도 “어린 딸 떨어져 지낸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 어른도 알아 볼 줄 알고 더 예의 바르더라”며 손자들을 직접 키워 본 당신의 경험담을 말하며 격려를 해 주시네요. 이래서 가족은 소중한 것인가 봅니다. 환절기 건강에 유의하시고 하는 일 잘 되기를 빕니다. 
                                             06. 9.24 이곡동에서 윤 희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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