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질녀들에게

녹색세상 2006. 10. 3. 00:44

 

 

사랑하는 질녀 보라·정민아

이번 명절에 또 너희들 얼굴을 보지 못하고 전화로 겨우 목소리만 듣게 생겼구나. 너희들이 많이 걱정해 주는 해린이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어느덧 자라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단다. 너희들이 말하는 복현동 삼촌들이 청년 시절부터 온 집안에 찍혀 있던 시절 집안 어른들이 우리 보고 빨갛다고 말하지 않더냐고 물었을 때 삼촌 얼굴은 우리 집안 남자 중에서 가장 하얗고 피부도 좋은데요라며 정민이 네가 말해 한 바탕 신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여중생 특유의 섬세함과 예리함으로 색깔 운운하는 것에 바로 종지부를 찍어 버린 네 표현에 놀라기도 했고. 삼촌 세대는 그런 말이 나오면 한참 설명해야만 하는 말을 너희는 간단하게 딱 한 마디로 정리하는 지혜가 있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너희 조부모가 너무 재산에 눈이 어두워 상속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집안 재산을 꿀꺽 하는 바람에 이런 도둑놈들과 난 절대로 같이 제사 못 지낸다고 한 후 명절에 너희들 얼굴 본지 너무 오래된 것 같구나.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집안 재산까지 말아먹는 것을 보고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문제 해결은 단 하나, 도둑질한 집안 재산을 공동명의로 해서 어느 누구도 손댈 수 없도록 하는 것 말고는 없다고 난 생각해. 예의범절 없다는 소리 거의 듣지 않고 살아왔는데 너희 친조부모들과 숙부 고모들로부터는 버르장머리 없는 인간이란 어이없는 소리 듣고 살지. 원래대로만 해 놓는다면 난 언제라도 찾아가서 무릎 꿇고 어른들에게 경솔하게 처신한 부분에 대해 용서를 빌 준비가 늘 되어 있다. 이 마음 그 분들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남들이 안으면 울다가도 내가 안으면 울음을 뚝 그친 보라야, 네가 벌써 대학 졸업반이 되었구나. 너희들 아버지가 마흔이 안 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로 온갖 고생하며 살았는데 반듯하게 자라 줘 부모 뻘 되는 사람으로서 너무 고맙기 그지없구나. 어느덧 정민이는 20대 중반의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취직하기 힘들면 연락하라고 몇 번 메일도 보내고 연락하라고 했는데 해결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정민아.

 

너희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제대로 도움 한 번 주지 못하고 세월 보내 볼 면목이 없구나. 그렇지만 부모 뻘 된 자로서 이것만은 부탁하지 않을 수 없구나. 요즘 젊은이들이 사회 문제에 너무 무관심한데 자신의 문제에만 너무 매몰되지 말고 청년으로서 이 땅의 현실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고민하며 살아갔으면 한다.

 

오늘은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부 쿠데타로 자신의 휘하에 있는 군인으로부터 1973년 죽음을 당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부인이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상을 받은 날이란다. 남미 최초로 선거로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한 칠레, 의사 출신으로서 개인의 병을 고치는 공부를 하다 남미의 암울한 현실을 보며 그 한계를 절실히 느낀 후 세상의 병을 고치는 의사로 나선 사람이 살바도르 아옌데란 분이란다. 남미를 완전히 장악해 자신의 똘마니로 만들려 했는데 예상을 뒤집고 칠레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니.

 

 당황한 미국이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꼭두각시 군부를 사주해 쿠데타를 일으켜 탱크를 앞세우고 대통령궁으로 향했지. 물론 하늘에는 전투기가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항복하고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 준다며 선무 방송을 자기들 총사령관인 대통령을 향해 퍼부었고. 그 때 경호원들이 각하 위험합니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피해야 합니다고 하자 살바도르 아옌데는 절대 그럴 수 없어. 난 국민들이 뽑아준 대통령인데 쿠데타군에게 물러설 수 없어라며 자신도 경호원들이 들고 있는 기관총을 들고 싸우다 특수부대의 누군가에게 죽고 말았어.

 

물론 그 후 칠레에서 군사 독재 정권이 장기 집권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나갔는지 가끔 듣기는 했을 거야. 정통성이 없는 쿠데타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그 인물을 대신해 부인이 상을 받으신 거지. 그런 나라 칠레에서 얼마 전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한 여성이 대통령이 되었어.

 

의사였던 자신도 군사정권에 대항해 싸우다 감옥도 갔다 왔지. 그는 당선자 인터뷰에서 내각 구성은 남녀 반반으로 하겠다고 해 신선한 충격도 주었고. 그런 나라에 밝은 빛이 비추는 것이지. 역사의 어둠이 끝도 없이 갈 줄 알았건만 어둠은 해가 뜨면 없어지고 만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 무너지고 만 것이라고 생각해. 물론 그 그간 동안 칠레에서는 얼마나 많은 고문과 암살 사건, 행방불명자들이 발생했는지 모르지.

 

사랑하는 우리 큰딸 보라정민아!

고생만 하고 살아온 너희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으나 이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젊은이라면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비록 너희 아버지가 군사정권에 자신의 지식을 팔며 먹고살다가 어리게만 본 복현동 작은 삼촌에게 군사 독재 정권 선거 운동 말을 꺼냈다가 형님, 그런 얘기하려면 전화하지 마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술로 지내다 마흔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난 것 지금도 가슴이 아프단다.

 

모두가 그 시대가 만든 희생양이라고 난 생각을 한다.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것 아는 사촌 형제끼리 우리 사회 앞날을 얘기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단다. 난 그 후 당당하게 말했어, “우리 집안은 출신 성분이 좋지 않다. 일제 침략이 본격화 될 무렵 증조부가 면장을 지냈고, 사촌 형님은(너희 아버지) 군사 정권에 자신의 지식을 팔아먹으며 살아간 사람이라고 말야.

 

우리 집안의 치부이지만 내가 드러내 말하니 욕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 그리고 우리 형제는 그 치욕을 씻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고. 우리 언제 이런 얘기 나누며 밤 세울 날이 올까? 내가 사는 게 이래 자리 마련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하루라도 빨리 그런 날 오도록 노력하마. 이 땅의 젊은이로서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빌게. 언제나 밝고 해 맑은 너희들을 얼굴을 잊을 수 없구나. 사랑하는 우리 큰 딸내미들아, 이번 추석에 목소리만 듣지 않고 얼굴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069월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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