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꾸지람보다 칭찬으로 이끈 아버지

녹색세상 2012. 7. 13. 15:08

처남의 결혼문제를 해결한 자형

 

둘째 외숙부와 작은 아버지는 힘든 결정을 할 때 마다 아버지를 찾아오셨습니다. 백부님이 일찍 돌아가셔 아버지를 시어른처럼 모신 큰 집의 형수들도 그랬습니다. 모두 아버지가 그건 안 된다고 하면 고민하다가도 따르곤 했습니다. 외숙부는 동성동본인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 그렇게 만나 연애를 했으니 머리를 싸매다 자형인 아버지를 찾아온 거죠. 외가의 족보를 훑어 본 아버지는 촌수가 너무 멀어 남이라며 장인(외조부)을 찾아가 결혼 시켜도 됩니다며 설득을 하셨다고 합니다.

 

결혼 문제를 해결 해 준 자형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광산 경기가 좋던 시절 직접 석탄을 캐는 업체의 소장으로 오래 근무했으니 보통이 넘는 성격입니다. 당시 광산에는 강아지도 돈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먹고 사는 건 큰 걱정하지 않았으나 법 보다 주먹이 가깝던 시절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상대 하려면 더러 힘을 쓰기도 했죠. 그런 양반이 아버지 앞에 꼼짝을 못하는 게 결혼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란 걸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외숙모는 객지를 떠돌다 보니 동생들 교육이 늘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무렵 광산 근무를 청산하고 대구로 와 학교 앞에서 중화요리집을 했습니다. 학교가 무려 3개나 있는 곳에 경쟁 업체가 없었으니 길목은 정말 좋았습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주방장이 똥고집을 부린다고 외숙부가 몇 대 때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장 점심을 해야 하는데 난리가 난 거죠. 외숙모는 바로 우리 집에 전화를 해 아버지에게 긴급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만사를 제쳐 두고 택시 타고 달려가신 아버지는 처남, 이거 뭐 하는 짓이냐?’며 바로 꾸지람을 했는데 불같은 성격에 분을 못 이기면서도 꼼짝을 못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주먹 잘 쓰느냐는 말에 바로 꼬리를 내린 건 그만큼 무게가 있는 분이기 때문이죠. ‘맞고는 일 못한다는 주방장을 아버지가 직접 달래고, 손 아래 처남인 외숙부에게 억지로라도 사과하게 만들어 일을 하는 걸 보고 아버지는 나오셨으니 어지간하죠.

 

 사람이 따른 건 꾸지람 보다 칭찬

 

작은 아버지는 결혼을 할 때 아버지가 신혼집을 구해 주셨고, 자영업을 시작하면서도 아버지 신세를 졌습니다. 우리 집에 할머니를 모셔 자주 올 수 밖에 없었죠. 몇 번 농사에 실패를 한 큰 종형이 선답을 남에게 팔 수 없어 고민하다 아버지와 상의 끝에 작은 아버지에게 팔았습니다. ‘다시 살 형편이 되면 그 때 시세로 한다는 조건은 달았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조상이 물려준 땅을 팔지 못하게 하려는 아버지 나름대로 의도가 있었죠.

 

몇 년 후 사업이 어려워진 작은 아버지가 자금 때문에 선답을 팔려고 아버지를 찾아와 상의를 했으나 그 땅 팔려면 다시는 내 얼굴 볼 생각하지 마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형님, 너무 어렵습니다고 매달렸지만 아버지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안 된다고 하면 끝까지 가는 아버지 성격을 아는지라 그냥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제가 그 연배인데 그런 말 생각조차 못 하는데 정말 권위가 있는 분이죠. 동생이 어려울 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내 놓았으니 작은 아버지로선 무시할 수 없었기도 하겠지만 말이죠.

 

둘째 외숙부는 지금도 백씨인 큰 외숙보다 자형인 아버지 말이라면 그냥 따를 정도입니다. 할머니를 모셔 어머니가 외출하기 힘든 시절에도 외가에 제사가 있으면 꼭 가도록 하셨고, 우리가 자란 후에는 두 분이 꼭 가시니 외가에서 신임이 대단하죠. 큰 아버지 두 분도 동생임에도 중요한 결정은 꼭 물어 보곤 하실 정도입니다. 명절에 질부들이 절 하러 오면 못 난 놈 만나 우리 집에 와서 고생한다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심은 물론이죠. 아버지의 이런 비결은 꾸지람보다 칭찬이었음은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