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3년 전 6월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자식 앞에서 어미의 멱살을 잡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핑계를 댄다 할지라도 정말 몹쓸 짓을 한 거죠. 이유야 어떻든 그 일은 입이 열 개라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사고로 입원 중 아이의 생일이라 가족이 놀러 갔습니다. 세 살 배기 딸은 몇 달 만에 보는 아비를 어색해 했지만 금방 서로 웃으며 즐거워했죠. 그래서 가족이겠죠. 딸은 어른들에게 맡기고 집으로 가는 길에 노래방에 아들 녀석도 같이 노래 부르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술을 한 잔 더 하는 자리에서 아내가 뭐라 하는데 말에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은데 그 순간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다음 날 전화를 해 ‘내가 잘못을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아무리 그래도 어린 자식 앞에서 멱살을 잡을 수 있느냐’는 말에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한 후 먼저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당장 해린이(딸) 외가에 가서 무조건 잘못을 빌고 오라며’ 노발대발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서른 초반 술이 취해 집에 들어서자 ‘네 종형 둘이 술 때문에 죽었는데 목에 넘어가느냐’는 꾸지람을 들은 후 처음이었습니다. 바로 청송 행 버스를 타고 처가로 가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린 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으니 한 번만 기회를 주시라’며 간곡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다음 날 집으로 와 아들을 불러 ‘내가 잘못했다. 네 앞에서 어머니 멱살을 잡은 건 정말 잘못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테니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되겠느냐’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자 녀석은 닭 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라며 울음을 터뜨리고 저도 아이를 껴안고 같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 자식 앞에 무릎까지 꿇느냐’고 할지 모르나 큰 충격을 받은 아이를 생각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잘못을 고백하고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한 때문인지 아이에게 ‘네 앞에서 어머니에게 잘못한 것 생각나느냐’고 물어도 그 때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와 관계가 회복된 이유는 아무리 어린 자식이지만 바로 잘못을 고백하고 잘못을 빌었기 때문에 아이의 상처가 더 이상 깊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인이나 조직은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도 있습니다. 실수는 줄이면 되고 잘못은 되풀이 하지 않는다면 굳이 문제 삼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입을 닫고 ‘떠들어 보라’며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남들이 욕하지 않는 게 이상하죠. ‘그 때 일은 내 잘못’이라는 말을 하는 건 진보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사회생활의 기본입니다. 이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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