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과 인권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제소에 얽힌 이야기

녹색세상 2012. 1. 5. 16:24

 

어린 딸 앞에서 의자를 차면서 쌍욕까지

    

그 동안 미루었던 제소와 관련한 이야기를 이제는 해야겠다. 언젠가는 밝히려고 했는데 서로 얽혀 있어 말하기 쉽지 않아 그냥 두었다. 이제 그들이 떠났으니 밝혀도 괜찮을 것 같다. 2007년 3월 민주노동당 달서위원회 운영위원회에서 위원장이 의자를 발로 차고 여성에게 쌍욕을 퍼부은 사건이 발생했다. 상근자 채용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안건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어린 딸이 보는 앞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몰상식하기 그지없는 일이 벌어졌다.

 


현장에 없었지만 그 일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괴로웠는지 몰랐다. 폭력을 묵인하고 넘어간 것이 너무 괴로워 견딜 수 없었고, 피해를 당한 여성과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시간은 흘러 대통령 선거가 되었다. 그런데 12월 중순 위원장이 국회의원에 출마한다고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는 소식이 매일신문에 보도되었다. 시당 상근자가 물어봤으나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왜 오리발을 내밀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알아보니 등록한 게 맞았다. 당원의 피 선거권을 제한해서는 안 되지만 이와 관련해 지역 운영위원회에서 어떤 말도 오간 적이 없었다. 지역위원회 사무실을 선거사무실로 이용하고, 지역 상근자를 선거 사무원으로 등록까지 했으니 최소한 말이라도 하는 게 예의지만 끝까지 오리발이었다. 그냥 둘 수 없어 피해를 당한 여성과 상의해 폭력 사건과 아무런 논의없이 등록한 것을 묶어 당기위원회에 제소를 했다. 제소 내용은 피해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


제소장 대신 보낸 내용증명 

 

우여곡절 끝에 징계가 나왔으나 분당이 될 무렵이라 유야무야 넘어갔다. 피해자에게 ‘같은 당으로 가자’고 했으나 ‘아무리 좋은 이념과 철학이 있다 할지라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기 싫다’고 해 더 이상 붙들 수 없었다. 정치적인 해결을 위해 지인들을 통해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한다면 철회할 의사가 있다’고 했으나 묵묵부답이라 대화는 진행되지 못했다. ‘일 잘하는 사람을 제소한다’는 말에 ‘너희 가족이 당해도 그런 말 하느냐’는 말이 목까지 올라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분당 후 진보신당을 창당하면서 가해자는 ‘민주노동당 시절의 징계를 이수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당직을 맡았으나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이미 지역에 소문은 다 나버려 망신살이 뻗쳤음에도 그냥 넘어갔다. 약속하고도 지킬 기미가 없이 넘어가는 게 매우 불편했다. 위원장을 만나 ‘징계 이수를 약속하고도 이행하지 않아 조직의 신뢰가 바닥이다. 좋지 않으니 지켰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 자리에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후배 둘이 그 자리에 합석했다.


서로의 말이 다를 수 있어 마련한 자리였다. 그 후 위원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게 예의건만 그냥 넘어가려는 것 같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제소를 하려다 오랜 세월 진보정당 운동을 한 친구와 상의했더니 ‘서신을 보내보고 반응이 없으면 제소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해 편지를 보냈다. 이게 첫 번째 내용증명이 간 이유다. 내용증명이 갔으니 당연히 소문이 났다. 고생한 과정이 철저히 생략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후 결과를 전혀 알려주지 않아 물어 봤더니 ‘가해자 재발 방지 교육이수’가 아니라 피해자 상담원 교육을 받았으니 조직을 철저히 기만했다. 그 지경이 되어도 솔직하게 밝히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 했으니 인권의식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대로 두면 엉망이 될 것 같아 달비골에서 ‘앞산터널 반대 나무 위 농성’을 하던 그 힘든 시기에 두 번째 제소를 했다. 이때도 정치적인 해결을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말을 전달했으나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치적인 해결 제안에 묵묵부답

 

‘할 테면 해보라’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여지는 남겨 놓았으나 헛물만 켜고 말았다.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중앙당에 재심까지 갔으나 가해자는 징계를 끝까지 미루다 마지못해 채우는 등 문제 해결의 의지는 물론이요 조직의 징계를 겨우 하는 시늉을 했다. 이럴 때 마다 주위에서는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수 없이 했다. 넘어가도 될 일을 내가 ‘별나게 굴어 시끄럽다’는 말은 사람을 엄청나게 괴롭혔다.


모든 폭력이 나쁘지만 가정폭력과 조직 내부 폭력이 가장 나쁜 것은 피해자가 잘 드러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증거가 없으니 피해자의 고통은 점점 깊어만 간다. ‘너만 가만히 있으면 조용하다’는 압력은 정말 무서웠다. 지금 이 시간도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은 발생할 것이다. 피해자가 아내나 누이라도 가만히 있을 것인지 우린 자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 고백교회 성원으로서 끝까지 나찌 독재에 저항한 신학자 마르틴 니멜러의 글을 인용하며 마치려 한다.

 

“나치는 맨 처음 공산당원들을 잡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다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 들였다. 그러나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그들은 노동조합을 탄압했다. 그러나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했다. 그 다음 그들은 가톨릭신자들에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나는 개신교도였기 때문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나에게 들이닥쳤다. 그때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덧 글: 위원장과 가해자는 탈당해 떠났다. 지금이라도 ‘그 때 일은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한다면 어지간한 것은 풀고 ‘그 동안 고생했다’며 술 한 잔 나누고 싶다. 피해자는 6개월 넘게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고생을 했고, 1년 가까이 폭력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담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