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아까운 사람들(1)―동생을 생각하면서

녹색세상 2011. 4. 26. 15:43

‘저 사람 정말 아깝다’는 말을 간혹 듣습니다. 제 주위에도 아까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보다 3년 아래인 63년생인 남동생이 대학을 갈 때 갑자기 예비고사 반영률이 높아졌습니다. 자기가 예상한 것 보다 점수가 무려 4~50점 차이 나는데다, 재수를 할 사정이 안 되어 진로를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립사대를 가서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졸지에 운명이 바뀌게 되었으니 얼마나 허탈했을까를 자식을 키우면서 새삼 느낍니다.


어쩔 수 없이 수첩공주가 자리를 꿰차고 있는 대학의 건축공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교사의 꿈을 버리지 못해 2학년 때 부터 교직과목 이수를 하며, 야학도 하는 등 열심히 살았습니다. 둔한 저와는 달리 기예에 재주가 뛰어나 풍물도 금방 배워 상쇠도 하고, ‘놀러 가면 춤도 잘 추는 등 분위기 휘어잡는다’는 말을 동생 친구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군대 생활을 할 때는 부대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하는데 초등학생 4~50명을 혼자 갖고 놀 정도로 재주가 다양했습니다.


제대 후 복학을 하기 전까지 야학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수업 하면 재미있느냐’고 물었더니 ‘형님, 정말 신납니다’기에 ‘선생 체질’이란 걸 다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4학년 때 교생실습을 포기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요.‘왜 교생실습 안 갔느냐’고 물었더니 ‘국립사대 출신이 아니라 공립은 못 가고, 우리 집 형편에 사립학교에 자리 구한다는 불가능해 포기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대신 기자 시험을 준비한다’기에 ‘공대 졸업하기도 버거울 텐데 무슨 수로 기자 시험 준비하느냐’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할 수 없어 그냥 넘어갔죠. 마침 그 때가 기독교방송이 전두환 정권 때 폐지당한 뉴스방송을 부활하는 시기라 ‘여기가야 기자 노릇 제대로 할 수 있다’며 시험을 쳤는데 음성테스트까지 통과 했으나 면접에서 3번이나 떨어져 또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슨 놈의 인생이 그렇게 꼬이는지 허탈하기 그지없더군요.


그러자 ‘외국 갔다 오겠다’며 1년 정도 지내다 배운 도둑질이라 건설현장을 전전했습니다. 기자시험을 준비하며 닦은 영어 독해력에다 외국인과 같이 생활하면서 노력해 건설현장에서 외국인과 시공에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온갖 일을 다 하다 지금은 감리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밥 먹고 나가는 둘째 아들을 볼 때 마다 어머니는 가슴 아파 하십니다. 저도 동생을 생각하면 노가판에서 안타까운 사람을 썩히는 것 같아 속이 상합니다.

 

 

덧 글: 먼저 이 글이 건설현장에서 땀 흘리는 노동자들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란 말씀을 드립니다. 비유가 적절치 못했다면 사과를 합니다. 심상정 씨가 주장한 연립정부론에 대한 비판 글을 4월 8일에 쓴 후 처음 올립니다. 계획은 ‘노회찬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추진위원장에게’라는 제목으로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3~4편으로 이어서 쓸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