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이 끼얹은 진보정치 찬물의 후유증은
심상정 씨가 마치 선지자나 예언자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신문 레디앙에 만평을 기고하는 이창우 화백은 그를 ‘모두들 잠든 새벽에 깨어나 호롱불을 들고 길을 걷는 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결코 중립적이 아니라 계급성이나 당파성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조중동이 하는 짓거리나 오마이뉴스가 문국현 씨를 기대주로 부각시킨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시대의 어둠을 밝히려고 ‘고초를 각오한 진보정치의 선구자’로 그릴 정도라면 필자의 의도 역시 철저히 당파성을 띠고 있습니다.
만평에 나온 심상정은 시련을 각오하고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밝히는 선지자로 보입니다. 상식을 가진 기독교인들에게 선지자나 예언자란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게 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국어대사전에 선지자는 ‘남보다 먼저 깨달아 아는 사람’으로 나오고, 예언자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짐작하여 말하는 사람’으로 기재되어 있는 비슷한 말입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선지자가 위대했다는 건 증명이 불가능하니 적절하게 해석해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심상정이란 인물이 수 많은 선지자들 보다 못하지 않을 수 있으나 작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그가 보인 정치적인 행보와 비교하면 과한 표현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정책에 잘못이 없다며 아직도 우기는’ 유시민을 지지하며 선거 이틀 전 갑자기 사퇴를 한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게 진보냐’며 실망을 감추지 못합니다. 심상정의 후보 사퇴에도 불구하고 19만표 가까이 나온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죠.
무엇보다 진보정당의 정치인이기에 진보정치의 앞날을 걱정하며 표를 던진 유권자들에 대해 심상정 씨는 채무가 분명 있습니다. 진보진영 통합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통합을 말하는 사람들은 장밋빛 환상만 거론할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삽질이 막장이지만 민주당에도 토건족들이 많은데 그들과 연립정부 구성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은 진보정치의 흔적마저 녹여 없애버리는 무책임한 행위지요. 심상정 씨가 밝혀든 저 호롱불이 저는 매우 불편합니다.
다들 잠든 새벽에 일찍 깨어 길을 걷는 이가 있다. 1985년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구로동맹파업에 그가 있었고, 노동자 대투쟁의 불길 속에서 빚어진 전노협에 그가 있었다. 산업별노조 전환의 기관차, 금속노조에 그가 있었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 최초의 원내 진출에 그가 있었다.
그는 가장 유능한 국회의원이었고, 진보정치의 자랑이었다. 다시 어둠이 깔리고 밤이 깊어졌다. 그는 다시 새벽이슬로 발목을 적시며 길을 떠난다. 혼곤히 잠든 마을에서 초롱을 밝혀든 그는 너무 일찍 깨어난 것인가? 새벽잠을 설친 생명들이 멀리서 웅성댄다.(이창우 글ㆍ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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