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거리로 나선 고교생들은 프랑스 총파업의 가장 큰 힘

녹색세상 2010. 10. 27. 20:41

멈출 줄 모르는 파업의 뒷심은 거리로 나선 고교생들


두 달간 프랑스 사회를 들끓게 한 연금개편안이 지난 주말 상원에서 통과가 됐습니다. 정년과 연금수급 개시 시점을 2년씩 늦추는 내용의 법안은 상하양원합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쳐 27일 발효될 예정입니다. 국민 70퍼센트 이상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편안을 통과시킨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스스로 뚝심 있는 정치인이라고 자부할지도 모릅니다. 학교가 2주간 방학에 들어가 시위와 파업의 강도가 약해진 것을 보고는 노동조합과 학생들이 반대시위를 해봤자 흐지부지되고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 ‘Je lutte des Classes’(나는 계급투쟁한다)고 선언하는 시위 참가자들.


하지만 그동안 전개된 시위 양상을 복기해보면 상황이 그처럼 호락호락할 것 같진 않습니다. 시위를 촉발한 것은 연금개편 문제였지만 고등학생들까지 거리로 불러낸 것은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사르코지가 연금개편 뜻을 밝혔을 때만 해도 프랑스 분위기는 체념상태였다고 합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사르코지 정부의 부패 스캔들이 연이어 터지면서였습니다. 돈에 관한한 어느 나라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다시 증명되었습니다.


로레알그룹의 상속녀인 릴리안 베탕쿠르가 2007년 대통령선거 때 사르코지 쪽에 불법 헌금을 현금으로 공여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당시 선거자금 관리자는 연금개편을 지휘한 에리크 뵈르트 현 노동 장관이었습니다. 사르코지 집권 초 예산장관이었던 그는 아내를 베탕쿠르의 자산관리인으로 취업시키고, 그의 해외 자산은닉을 눈감아줬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사르코지 핵심 측근인 기 빌덴슈타인의 해외 재산은닉 혐의를 제보 받고도 무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부정부패를 눈감지 않고 거리로 나선 청소년들


감세로 부자들의 곳간을 채워주고 금융위기를 초래한 은행과 대기업에 나랏돈을 퍼부어준 것도 모자라 국고를 책임지는 예산장관이 세금포탈을 방조해 국고를 축냈다는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그런 자가 재정위기를 들먹이며 서민 노후생활의 구명선인 연금을 줄이겠다고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프랑스 고교생들까지 시위에 참가한 것을 두고 취업도 하기 전에 정년 이후를 걱정한다고 비아냥거렸으나 이는 연대 투쟁을 하는 프랑스를 모른다는 것이죠.

 


고교생과 연금개편 찬성론자들조차 개편안에 등을 돌리게 만든 것은 불의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사회정의에 대한 갈망은 프랑스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의 거침없는 질주로 빈부격차 확대는 전 세계적 현상이 됐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임시직을 전전하며 불안한 삶을 영위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납니다. 가까스로 일자리를 얻어도 일상화된 해고 탓에 노동자들의 삶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오죽하면 미국 노동자들이 정년 연장 반대 시위를 벌이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부럽다고 하겠습니까?


세계의 공장으로 30년간 고도성장을 구가한 중국 역시 격차 확대로 빚어진 인민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포용성 성장’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프랑스 시위의 추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수십만 부씩 팔리는 것을 보면 정의에 대한 갈증은 우리 사회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춘은 늘어만 갑니다.


10대 청소년들은 불의에 맞서 세상을 뒤집었다.


기득계층은 외교부 특혜인사처럼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식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줍니다. 최근 각종 기업 수사에서 확인되듯이, 우리 기업인들은 부를 자식에게 승계시키기 위해 온갖 불법적 수단을 동원합니다. 쪽방 투기로 기층민중의 등을 친 인물이 장관 후보가 되는 기막힌 일을 수시로 겪습니다. 전과 14범의 이명박 정권은 자신이 부패해 측근들의 어지간한 불법을 무시해 버리면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의 싸움은 강력하게 탄압을 해댑니다.


정의의 회복이 프랑스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긴급한 과제라고 인식한다면 프랑스 시위에서 1980년대 이후 사라졌던 계급투쟁 구호가 재등장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굴복하지 말라, 계급투쟁이다’라는 문구를 들고 나온 것을, 지금 정의의 위기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계급투쟁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10대 고교생들이 거리로 나와 싸우는 프랑스를 보고 ‘후진국’이라고 이명박 정권이 거품 물지는 않겠지요? 

 

우리도 ‘4.19혁명’을 통해 고교생들이 나서면서 독재 정권을 갈아 엎은 자랑스런 역사가 있음을 압니다.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1945년 부민관 폭파 사건'의 주역인 조문기 선생의 당시 나이는 19살이었습니다. 유신독재 반대 싸움에 고교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청소년들이 나서면 역사가 바뀐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권력과 자본은 국정교과서를 고집하며 주입식 교육을 통해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속칭 ‘일류대를 기점으로 한 전 대학 줄 세우기’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한겨레신문)


 

덧 글: 한겨레신문에 난 기사를 바탕으로 인터넷신문 레디앙의 기사를 일부 인용했으며, 사진은 레디앙에서 퍼 왔음을 밝힙니다. 유투브나 다른 사이트를 검색해도 적절한 동영상이 없어 꼴 보기 싫은 동아일보 뉴스지만 가장 근접한 것이라 퍼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