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를 마치고 봄맞이 시작
봄을 재촉하는 비가 연일 내리고 있습니다.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개상이변이 심각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창조주의 경고임에 분명합니다. 지금이라도 좀 더 적게 쓰고, 작은 집에 사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지구촌 전체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비행 훈련 중 추락 사고가 발행해 조종사 3명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쳐 앞을 볼 수 없는 악천후에 훈련을 시켜 놓고도 공군은 ‘시야확보가 가능했다’는 말만 늘어놓습니다. 이번 사고 역시 조종사들의 잘못으로 몰아갈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 억원의 혈세로 훈련시킨 일꾼들을 ‘당사자 잘못’으로 몰아붙이니 누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충성하겠습니까? 최소한 진상 규명이라도 하고 고인들의 명예를 더럽히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 예의입니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네가 잘못해서 죽었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한 나라입니다.
이번 겨울이 워낙 추워 토굴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그야말로 ‘방콕’을 했습니다. 난방비가 엄청나게 나왔음은 물론이죠. 동안거를 마치고 봄을 따라 새로운 걸음을 옮기려 합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이집트 탈출’처럼 다소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제게 주어진 길을 찾아갑니다. 가나안 입성은 정착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당한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보름날인 지난 일요일 제가 있는 토굴의 인근인 김천에 다녀왔습니다.
찾는 물건이 대구에는 없고 가장 가까운 곳인 김천에 있다고 해 미리 전화를 하고 가지러 갔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면 전국 어느 지점에 있는지 즉각 확인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어 편리하지요. 그렇지만 이런 편리함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오가며 얼굴을 보는 끈끈한 정이 사라져 버리니 편리와 함께 삭막함이 같이 와 버린 것이죠. 찾는 물건을 사고 시간이 남아 잠시 쉬며 몇 군데 전화를 하러 시외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제과점에 들어갔습니다.
지방 도시에 이런 아늑한 분위기의 제과점이 있으니 참 좋더군요. 연배가 오십대 후반 가량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기에 ‘혼자 오시나’ 했는데 조금 있으니 초로의 신사 한 분이 들어오시더군요. 작은 지방도시라 남의 눈 때문에 마음 놓고 데이트하기 곤란하니 연배 사람들이 잘 안 찾는 곳에 오신 것 같더군요. 남의 눈에 보이면 바로 소문 나버리기도 하고, 담배 냄새 자욱한 곳이라 피하는 게 당연하죠. 밝은 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러 오신 모양입니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지만 나이도 없다’는 말을 갈수록 더 많이 느낍니다. 삶의 연륜이 멋지게 묻어나는 노인들이 마치 청춘 연인들 처럼 다정하게 앉아 있는 장면을 많이 봅니다. 자식들의 반대 때문에 같이 못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입에 발린 소리지만 보기 좋아 몇 마디 거들었더니 두 분이 흡족해 하시더군요. 기억나는 은사님들에게 보름맞이 전화를 드렸습니다. 차 시간이 되어 ‘재미있는 시간 가지시라’며 버스를 타러 나왔습니다.
▲ 3일 오전 공군 KF-5E/F 전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어 대위 유족이 강원 평창군 사고 현장 캠프에서 오열하고 있다. 공군 제18전투비행단 소속 KF-5E/F 전투기 2대는 지난 2일 강릉 공군비행장에서 이륙 5분 만에 추락해 조종사 3명이 모두 순직했다. (사진: 오마이뉴스)
민족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이주민들에 대한 폭력
일요일이라 인근 공단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평소 뭘 사러 저녁에 가면 자주 봅니다. 이제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와 있습니다. 어설프기 그지없는 진보가 아직도 민족순혈주의에 거품 무는데 과연 이런 현실을 보고도 하는지 갑갑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아이를 업은 아시아 이민 새댁들도 많이 봅니다. 농어촌은 그 사람들이 낳은 자식들이 절반 넘게 차지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한다면 이젠 ‘민족’이란 말을 하는 게 예의가 아닌 세월이 되었습니다. ‘민족주의’를 말하는 순간 피부색이 다른 그들이 설 자리를 빼앗아 가 버리는 거지요. 잠깐의 외출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한 하루였습니다. 글을 좀 쓰려 동안거를 자처했으나 외부 자극이 없으니 머리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역시 사람은 적당한 자극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냥 편한 것 보다 ‘적당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오히려 사람 몸을 건강하게 하듯이 외부와 단절된 생활은 그리 오래할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과 교류하면서 서로 막걸리 사발도 오가며 사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이자 풍류이기도 하지요. 새로운 곳에서 서로 어울리며 저녁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계속하러 길을 떠납니다. 시간을 내어 짐을 옮겨 주겠다는 후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사람 하나는 진국인 친구입니다. 말 한 마디에 ‘언제면 됩니까’라고 하니 좋은 인연을 둔 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어 다음 주에 듣기로 한 게 이번 주로 당겨졌다며 ‘주말이라야 된다’며 전화가 왔더군요.
꽃샘추위는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
아직 불편한 허리를 좀 치료하라고 하느님이 시간을 주시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필요한 물품을 챙기러 대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잠시 삐끗한 걸 방치 했더니 열흘 넘게 애를 먹여 한의원도 다녀왔는데 편치 않아 통증 부위를 잘 잡는 주치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방사선장비로 주사 놓을 부위를 정확히 찾는데 신기할 정도로 통증이 낫더군요. ‘몇 번 더 치료하자’고 해 느긋하게 마음먹기로 했습니다.
저녁 시골 길은 봄기운보다는 아직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내복을 벗을 수 없도록 만듭니다. 낮에는 기온이 올라 내복을 벗어도 되지만 밤이나 그늘진 곳은 체감 온도가 떨어져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의 발악을 느낍니다. 오는 봄이라 그냥 있으면 되련만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아무리 꽃샘추위가 발악해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건만 시샘을 넘어 발악하는 무리들이 설치니 눈꼴 서럽기 그지없지요.
때가 되면 자리를 비켜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이치 하나만은 분명히 깨달은 동안거였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이 곳곳에서 판을 치더니 급기야는 마지막 남은 공영방송인 MBC마저 나팔수를 보내는 무리수를 둡니다. 삽질로 4대강 곳곳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국민의 알 권리마저 빼앗으려는 저 미치광이들의 광란의 질주가 멈출 줄 모릅니다. 이제 저 미치광이들은 무덤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다만 저들이 저질러 놓은 치다꺼리를 민중들이 해야 하는 게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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