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적자생존은 약육강식이 아니다.

녹색세상 2010. 3. 4. 01:57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뭐가 다르냐’고 조카 녀석에게 물었더니 ‘삼촌, 글자가 다르잖아요.’라기에 한 바탕 웃었습니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어 멸망하는 현상’이라고 나오더군요.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가 제창하였다고 합니다. 적자생존을 약육강식(弱肉强食)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강자가 모든 것을 싹쓸이 하는 승자독식을 적자생존으로 잘못알고 있는 것이지요.


공룡이 가장 크고 강자였지만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거대한 몸집을 지탱하지 못하고 멸종되고 말았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적응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지요. 컴퓨터가 일반화 되고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면 살아갈 길이 막막해 졌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어지간한 정보를 검색하는 세상이니 인터넷에 적응을 해야 합니다. 어지간한 것은 누리편지(이메일)로 보내는 게 보편화 되어 있으니 적응을 넘어 활용하지 않으면 뒤처지고 맙니다.


지구상에 수 많은 생물들이 있었지만 강자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았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넘어 무한 경쟁에 내몰려 있는 게 우리 사회 현실입니다. 더구나 인터넷이 보편화 되면서 급격하게 변해 정치범들이 징역살이 몇 년 하고 나면 적응하느라 한참을 헤맨다고 합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에는 신문만 계속 읽어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 무한 경쟁은 소수의 승자가 잠시 독식하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가장 위험한 게 ‘완벽한 승리’라고 합니다. 상대를 완전히 제압한 게 잘 한 것 같지만 그게 아니란 것이죠. 내가 적절하게 기선만 제압하면 되지 완전히 항복을 받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겨도 적당히 이겨야 하는 게 협상의 기본원칙입니다. 패자에게 최소한 20~25퍼센트 정도는 남겨 두어야 뒤탈이 없습니다. 누군가 ‘세상은 약육강식’이라며 맞추어 살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매우 위험한 방식을 택한 것이죠. 영원한 제국이 없듯이 영원한 승자는 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완벽하게 패배한 사람은 반드시 복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당근과 채찍’이란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가 그런 것이지요. 완전히 제압하지 않고 적당히 구슬려 가면서 정말 말을 안 들을 땐 ‘잘못하면 너 다친다’고 슬쩍 던지는 게 위험 부담이 가장 적습니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 값어치가 높지 막상 빼어 다 보여주면 의미가 축소됩니다. 무한 경쟁사회니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상대에 대해 적당한 배려를 하며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본이 서로 거래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