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겨우 내 죽지 않고 살아남은 풀의 생명력

녹색세상 2010. 2. 18. 10:20

 

이 곳 산골로 온지 달포가 넘었습니다. 춥다는 핑계로 집 주위 청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깔끔을 떠는 남자가 그냥 방치해 놓았으니 아는 사람들이 보면 의아해 할 것 같습니다. 설도 지나고 오늘 날씨도 풀리고 해 풀도 뽑고 쓰레기도 치우는 대청소를 했습니다. 도시와는 달리 간단한 것은 태우는 경우가 많아 큰 깡통을 구하러 주유소를 찾아갔습니다. ‘엔진오일 빈깡통 얻으러 왔다’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주더군요. 도시와는 다른 농촌의 인심이겠지요.

 


연장으로 뚜껑을 떼 내고 간이쓰레기소각장을 만들었습니다. 챙겨 온 망치와 연장이 긴요하게 쓰이는 걸 보며 ‘버릴 게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낫질을 하는데 마른 풀 사이로 살아있는 푸른 풀이 보여 너무 신기했습니다.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왔는데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있으니 말이죠. 자연의 신비로움과 생명의 끈질김을 느꼈습니다. 풀로 덮인 주위를 집 앞쪽이라도 좀 치웠습니다. 마른 풀이 쉽사리 뽑히지 않는 것은 저렇게 살아 있는 게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적당히만 자라도 그냥 둬도 되련만 사람 키만큼 자란 것이 수두룩하니 너무 을씨년스러워 낫질을 했습니다. 녹이 슨 낫을 들고 반거충이 일꾼이 하니 제대로 될 리 만무하건만 몇 시간 지나니 조금 깨끗해지더군요. 날씨가 풀리면 주변 정리부터 하고 텃밭을 일구어 볼까합니다. 채소나 고추 정도는 밭에서 따 먹어 볼까 합니다. 일과를 마친 후 채소 조금 뜯고 고추 몇 개 따서 된장에 찍어 먹는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농사일을 전혀 모르니 무리하지 않고 서 너 가지만 해 보고 손에 익으면 차차 늘려갈까 합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텃밭에서 따서 대접하는 게 예의이기도 하죠. 한 동안 운동도 게을리 하고 일도 하지 않은 탓인지 별로 하지 않았는데 허리가 아파 혼이 났습니다. 자세를 제대로 잡지 않고 적당히 하려다 오히려 애꿎은 허리 고생만 시켰습니다. 봄이 머지않았으니 주위 풀이라도 치워 사람이 산다는 흔적이라도 남겨야겠습니다. 겨우 내 죽지 않고 살아남은 풀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