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삼성 ‘서열 2위’ 이학수는 경영복귀 했는가?

녹색세상 2010. 2. 20. 12:01

 

삼성특검 여파로 지난 2008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전 전략기획실장ㆍ부회장)의 발걸음이 최근 들어 바빠진 듯하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국내외 행사에 동행하는가 하면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도 꾸준히 출근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의 최측근이자 그룹 내 2인자였던 그였기에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 삼성그룹 내부는 물론 재계 전체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학수 고문은 지난 1월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에 이건희 전 회장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전 회장의 CES 참석은 지난 연말 단독 사면ㆍ복권 이후 첫 해외 행보인 동시에 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리움 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등 자녀들을 대동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 전 회장 가족 못지않게 눈길을 끈 인물이 바로 이학수 고문이었다. 지난 2008년 ‘4ㆍ22 삼성쇄신’안 발표를 통해 전략기획실장(부회장)직에서 고문으로 물러난 뒤 여론을 의식한 듯 눈에 띄는 대외 행보를 자제해 온 까닭에서다.


아직 집행유예 상태인 이 고문의 이 전 회장 밀착수행을 지켜본 재계 관계자들은 이건희 회장 시절의 그룹 내 2인자 위상이 그대로 느껴졌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 "이 고문의 CES 참석이 그간의 물밑 행보에서 벗어나 공식 활동을 재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해석이 들렸고 이후 행사에 이 고문은 늘 이 전 회장과 동행했다. 이학수 고문은 전략기획실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 줄곧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삼성 측은 “상근 고문이기 때문에 계속 출근했다”고 밝힌다. 그런데 이 고문이 순수하게 ‘고문 역할’만 수행했을 거라 보는 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삼성쇄신안 발표를 통해 이건희 전 회장이 총수직에서 물러났지만 삼성의 경영은 여전히 이 전 회장의 입김을 통해 굴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재계에선 이 전 회장이 이 고문을 통해 이른바 ‘리모컨 경영’을 한다고 보고 있다. 사실 이 고문이 물밑에서 과거 전략기획실장 시절 수준의 활발한 경영 행보를 펼친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다.

 

▲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앞줄 왼쪽 둘째)이 1월 9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가전제품 전시회(CES)를 찾아 딸들의 손을 꼭 잡은 채 전시장을 함께 둘러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장. (사진:한겨레신문)


이 고문이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전무의 부사장 승진을 필두로 한 세대 교체형 인사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재계 소식통들 사이에 파다했던 것이다. 당시 이 고문 주도하에 신년 초 해왔던 정기인사를 앞당겨 연말에 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이 전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명분으로 연내 사면·복권된 뒤 밴쿠버올림픽 개막 이전부터 올림픽 유치활동에 전념하려면 인사를 연내 마무리해야 한다’는 논리에서였다.


국정원 검찰 등 정보ㆍ사정기관은 물론 각 대기업 정보팀 담당자들이 ‘이 고문의 인사 개입설’을 앞 다퉈 윗선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전 회장 사면 협상을 위해 이 고문이 청와대 고위 인사를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이윽고 지난해 12월 15일 이재용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12월 31일 이 전 회장에 대한 단독 사면ㆍ복권이 단행되자 재계의 시선은 이 고문의 경영활동 복귀 가능성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 고문이 이 전 회장의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에 적극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 또한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최근엔 이건희-이학수 동반 경영복귀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점쳐지기도 한다. 이 전 회장은 지난 5일 '고 호암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복귀 시점을 묻는 기자들에게 “회사가 약해지면 해 야죠”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경영에 참여하는 게 아니고 도와 줘야죠”라고 덧붙였지만 이는 그동안 재계 인사들 사이에 나돌아왔던 이 전 회장 복귀설과 더불어 ‘2인자 이학수’ 고문의 동반 복귀 가능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물론 이날도 이 고문은 이 전 회장을 수행했다.

 


이 고문은 전략기획실장 시절 이 전 회장의 복심으로 통했던 동시에 그룹 내에서 이 전 회장 다음 가는 권력을 지닌 인사로 통했다. 지난 2007년 10월 삼성그룹 비자금과 이건희 전 회장 차명재산 의혹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팀장)는 최근 펴낸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이 고문을 “이건희 전 회장으로 통하는 언로를 장악하고 있는 실세”라 표현했다. 재계에선 지금도 이 고문이 전략기획실장 재직 시절처럼 이 전 회장 자택을 주기적으로 찾아가 주요 현안을 보고하고 지시사항을 전달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전략기획실에서 이 고문과 손발을 맞췄던 인사들 중 다수가 그룹 내 주요 보직에 앉아 있다는 점도 이 고문의 막후 영향력을 눈여겨보게끔 만들고 있다. 그러나 한때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통할 정도로 막강했던 이 고문의 존재가 이재용 부사장의 원활한 승계과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수년 내 이재용 부사장의 총수 등극을 위해서라도 이 고문이 공식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시각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그의 책에서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그룹 수뇌부에서 ‘이학수는 버리고 김인주(현 상담역)는 건진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고문보다는 김인주 전 사장이 이재용 부사장 승계과정에서 더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이다. 이 고문이 현 정부와 숙명적 라이벌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라는 점도 변수로 거론된다. 김용철 변호사는 책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학수를 ‘학수 선배’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고 밝혔다.


노무현-이학수 두 사람이 인간적으로 가까웠다는 것이다. 대통령 취임 후 인수위 보고서와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를 같이 놓고 봤다는 참여정부에서 삼성이 깊이 개입한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은 연구소 보고서를 통해 도 ‘남북경제 교류는 강화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며 비정규직 양산에 적극적이었다. 어쩌면 이학수란 연결 고리를 통해 삼성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에 국가기구와 주요 언론을 장악하는 과제를 완료했는지 모른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 명분으로 단행된 단독 사면 이후 현 정권과 교감을 넓힌 이 전 회장과 이 고문의 사이가 예전과 같기만 할지 의문을 갖는 시각도 있다. 한편 이학수 고문의 역할 논란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이건희 전 회장이 편하게 생각해서 비서 역할을 하는 것일 뿐 그룹 내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고 밝힌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들은 “한때 ‘황태자도 넘을 수 없는 2인자’로 통했던 이 고문이 서초동 삼성타운에 꾸준히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삼성이 이미 그의 영향력 하에 놓여있는 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문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