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뉴라이트가 알면 큰 일 날 말을 했다. 29일 “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날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며 “한반도 평화와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될 상황이 되면 연내라도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우리가 유익한 대화를 해야 하고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양측 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뉴라이트를 비롯한 수구우파 집단이 보면 들고 일어 날 말인데 아주 당당하게 밝혔다. 대북 정책을 강경 일변도로 밀어 붙이던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것으로 남북문제를 풀지 않고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을 위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삼성이나 현대를 비롯한 재벌조차 ‘남북경제 협력 강화’를 주문할 정도로 북한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다. 소 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한 고 정주영 회장은 ‘건설업은 향후 25~30년 물량을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서해안 해안포 사격과 관련해서도 북한은 ‘관광객이 오지 않는 게 겁난다’고 할 정도로 내부 사정이 어렵다. 이런 북한이 남한을 공결할리 만무하다. 북한이 28일 이틀째 사격을 이어갔지만 정부는 이날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강경하게 대처해왔던 점과 비교하면 달라진 대목이다. 전날의 긴급 안보대책회의 같은 정부 차원의 공식 회의도 없었고, 관련 부처인 국방부나 통일부도 공식 브리핑이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오히려 개성공단 실무회담 대표단 명단을 북에 통보하는 등 남북대화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앞세웠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력화나 북ㆍ미 대화 촉구 등을 염두에 둔 북한의 ‘저강도 무력시위’에 맞불을 놓기보다는 차분하게 대응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ㆍ안보 분야와 경제 분야를 분리하는 북한의 ‘투 트랙’ 전술처럼 군사적 위협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대화 기조는 이어간다는 방침을 보이고 있어 일단 환영할 일이다.
▲ 북한이 이틀째 포사격을 가한 28일 백령도에서 바라본 북한 장산반도 해안절벽에 해안포 진지들(원안). 서해5도 주변 긴장이 고조되면서 이 일대에서는 중국 어선들만 조업하고 있다. (사진: 경향신문)
정부는 이날 다음달 1일 개성에서 열리는 개성공단 실무회담에 나설 남측 대표단 명단을 북측에 통보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NLL 주변에 포사격을 하는 변수가 발생했지만 예정된 회담은 진행해야 하는 만큼 실무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해 남측 대표단 17명 명단을 보냈다”고 밝혔다. 일부는 북한의 대대적인 해안포 사격 첫날인 27일에는 민간단체의 방북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대북의료지원단체인 ‘장미회’ 관계자 5명이 28일 중국 베이징에서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에 들어갔다. 이는 올해 들어 첫 민간교류 차원의 평양 방문이다.
과거와 다른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은 무엇보다 ‘한반도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세종시 문제를 비롯해 각종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고 보인다. 여기에 지난 19~20일 열린 해외공단 남북공동시찰 평가회의에서 개성공단 실무회담의 의제를 놓고 기 싸움을 벌인 끝에 북측의 합의를 받아내는 등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자신감도 더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변덕이 없기를 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복합적인 이유에서 연일 해안포를 쏴대고 있지만 결국 대화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며 “경제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무작정 고립무원의 상황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김태영 국방장관이 북한으로부터 핵관련 위협을 받게 되면 북한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데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라며 “특정사항을 거론한 것이 아니고 저쪽이 공격할 자세를 취하면 이쪽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는 군사상 일반론을 말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달라진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계속되길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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