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협상의 고수임을 보여 준 북한…왕초보 이명박 정권

녹색세상 2009. 8. 24. 01:37

 

“다 만나겠다”며 북한의 특사 조문단은 방문 첫날인 21일 오후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씨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시원하게 말했다.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실제 북한 조문단은 2박3일 동안 만날 사람은 다 만났다. 애초 1박2일이던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해가며 이명박 대통령, 김형오 국회의장, 현인택 통일부장관, 정세균 민주당 대표, 여야 국회의원, 임동원ㆍ정세현ㆍ정동영ㆍ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등 다양한 남쪽 인사들을 만났다.

 

▲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맨 왼쪽),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가운데)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조의방문단’이 23일 오전 북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숙소였던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을 나서며 취재진에게 “좋은 기분으로 간다”라고 말하고 있다. 오른쪽은 홍양호 통일부 차관. (사진:한겨레신문)        

 

 방문 기간 중 북한 조문단의 활발한 태도는 ‘특사 조의방문단’이란 지위에서 비롯되었으며 가장 먼저 조문을 왔다. 임동원 전 장관은 “북쪽이 조문단에 ‘특사’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보냈고, 남쪽 당국과 폭넓게 만날 수 있는 권한을 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북한 조문단은 21일 오후 서울에 도착한 첫날부터 적극적인 태도였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북한 조문단은 예정에 없던 김형오 국회의장의 면담 제의에 응했다.

 

조문단은 23일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한 뒤 평양으로 돌아갔다. 조문단은 이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했고 이 대통령 역시 김 위원장에게 전해달라며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남북 양 정상은 조문단을 통한 간접 대화에서 공통의 인식을 발견했다기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기본 입장을 교환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찬바람이 불던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문단을 맞이하고 당국 간 대화의 교량 역할을 했던 김대중평화센터 측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과 조문단의 만남은 남북관계 개선의 첫 걸음을 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과 조문단 영접을 맡았던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등 앞으로 있을 남북의 만남을 발전시키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막힌 남북 대화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으니 세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큰 선물을 주고 간 셈이다.

 

상대가 풀어 놓고 간 소중한 보따리를 받아 않을 것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정부가 풀지 못한 문제를 기업인이 끈질기게 기다리면서 합의안을 받아왔으니 밥 값 조차 하지 못한 정부로서는 체면 다 구긴 셈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고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콜린 파월 전 미국무 장관의 말처럼 ‘북한의 협상의 고수’임을 보여주었다. 남북 문제 해결에 똥줄이 타들어 가는 이명박 정권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