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국제

광복절에 연행당한 광복군 장교…영원한 민족주의자 장준하

녹색세상 2009. 8. 16. 22:44

 

“광복군 장교였던 내가, 조국광복을 위해 중국 땅 수 천리를 맨발로 헤맨 내가 오늘날 광복이 되었다고 하는 조국에서, 그것도 광복절 날 이런 데로 끌려 다녀야 하겠소?”


1974년 ‘씨알의 소리’ 편집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신촌의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의 집으로 가다가 자신을 연행한 중앙정보부 기관원들에게 장준하 선생이 외친 말이라고 들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지사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친일을 일삼던 무리들이 오히려 활개 치며 살아왔던 남한 현대사의 슬픈 풍경이 이 일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가슴 아픕니다. 그 비운의 주인공 장준하를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수업 중에 장준하 얘기를 꺼내면 아이들은 무한도전의 정준하를 먼저 떠올린다고 합니다. 대학생들 역시 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제대로 전하지 못한 우리 기성세대들의 잘못이 크죠.

 


일본군으로 입대해서 탈출한 뒤 6천리를 걸어 임시정부를 찾아간 청년, 중국 서안에서 국내 진공을 위한 OSS 특수 훈련을 받았던 광복군 장교였습니다. 해방 후 김구 선생의 비서로, 사상계의 발행인으로,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운 의로운 인물 장준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낯선 인물입니다. 이승만이 친일파 처단을 방해했고, 박정희가 일본 관동군 장교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낯선 것처럼 말이죠. 자유당의 정치깡패들도 아무 조직도 없는 장준하 선생을 어떻게 하지 못했습니다. 출판을 막기 위해 인쇄소 조판 위에 들어 눕는 등 온갖 방해를 훼방을 놓았으나 막지 못했으니 어떤 인물인지 짐작이 가지요.


대한민국 정부 최초의 의문사


고은 시인은 장준하 선생의 이름 앞에 ‘민족’이란 새 이름을 붙였습니다. 옛 귀족들의 개수작 같은 호가 아닌 평생 동안 온 몸을 불살라 지키려 했던 참가치가 바로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평전을 집필한 김삼웅은 장준하 선생을 흙탕물 같은 한국근현대사의 연못에 핀 한 떨기 연꽃과 같은 존재로 평가했습니다. 한국근현대사는 일제와의 투쟁, 일제가 뿌린 유산과의 투쟁 과정이었습니다. 그 투쟁의 과정이 장준하 선생의 삶이었습니다. 일제와 싸운 광복군 활동이 그랬고, 해방 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여기저기에 똬리를 튼 친일세력과의 싸움이 그랬습니다.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원 6000리 길을 사투를 벌이며 돌베게를 배고 맨발로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후 그의 삶은 생사를 넘나드는 가시밭길이었습니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독립운동에 나섰고, 민주전선에서 싸웠고 ‘사상계’를 발행해 불의와 대결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4월 혁명’을 전후해 일간지보다 더 많이 팔린 ‘사상계’는 4월 혁명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고, 자유와 민권의 가치를 확산시켰으며 민주주의와 지성의 광장 역할을 했습니다. 그 중심에 장준하라는 거목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이승만 독재에 대항해서 ‘사상계’를 창간해서 맞서고, 박정희 독재에 대항해서는 펜 대신 거리로 나서 민주회복과 통일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에서 등산 중 ‘실족사’ 했다고 발표를 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12미터의 높이에서 굴러 떨어진 시신에 별다른 외상이 없었고, 급소인 귀 뒤쪽이 날카로운 것에 찍힌 흔적이 있습니다. 경사 75도 12미터 높이의 암벽은 전문 등반가라도 마음대로 오르내리지 못하는 곳인데 장비도 없이 그곳으로 내려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산을 잘 탔다는 사람이었기에 의문은 깊어만 가지요. 함께 가지고 갔던 보온병은 깨지지도 않고 멀쩡했고, 입고 있던 옷도 찢겨진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준하의 죽음은 ‘실족사’가 아닌 대한민국 최초의 ‘의문사’입니다.

 


 다시 그리운 ‘장준하 정신’


평생을 일제와 맞서 싸운 장준하의 삶의 원동력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흙탕물과도 같았던 조국의 현실에 굴복해 사는 ‘못난 조상’이 아닌 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싸운 지사이고 투사였습니다. 흙탕물 같은 근현대사의 유산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장준하 평전을 연재한 김삼웅은 “장준하 선생이 대결하고 청산하고자 했던 것들이 다시 현재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군의 군사대국화,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로의 회귀, 갈수록 대결 양상을 띠는 남북관계, 어용 지식인과 날라리 언론인들의 광기 어린 칼춤을 보면서 새삼 장준하 정신이 그립습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