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사제와 스님까지 두들겨 패는 ‘경찰의 끝 모르는 폭력’

녹색세상 2010. 1. 27. 19:17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도 길바닥에 패대기치는 세상이다. 그것도 경찰이 떼거리로 모여서 두들겨 패면서 ‘국회의원이면 다야’라며 조소를 퍼붓는다. 살벌하기 그지없던 유신독재 시절에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독재정권이란 원죄 때문에 경찰은 야당의원들에게 찍소리 하지 못했다. 설치는 서장의 귀싸대기를 날려도 그냥 맞기만 했을 뿐 감히 ‘의원 영감님’에게 대드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명박 정권 전까지는 경찰이 국회의원을 길바닥에 내던지고 패는 짓은 없었다.

 

 ▲ 술 취한 경찰들에게 폭행당한 지관 스님이 27일 동국대 일산병원에 입원해 있다. (사진: 오마이뉴스)


그 전에는 공무 집행 중 성직자나 국회의원들이 조금만 다쳐도 바로 찾아와 ‘죄송하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 정도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국회의원들 뿐만 아니라 성직자들에 대한 폭행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용산참사 유족들과 함께 칠순이 넘은 문정현 신부가 손자 뻘 되는 전경들에게 모가지를 비틀리며 끌려가도 현장의 지휘관들은 모른척했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신부면 다야. 영감탱이가 설친다’고 면박까지 주었다.

 


지휘관들의 말 한 마디면 꼼짝도 못하는 조직의 특성을 감안하면 상부에서 묵인하거나 조장했음에 분명하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원로인 문정현 신부의 목을 비트는 것은 지금까지는 없었다. 이번에는 만취한 경관이 한밤중에 사찰에서 스님을 폭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비난이 일고 있다. 더구나 피해자는 ‘불교계 4대강운하개발사업 저지 특별위원장’이자 김포불교환경연대 대표인 지관 스님이다. 불교계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스님을 노린 것 아니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사찰에 만취한 채로 경찰이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폭행이 일어난 지 열흘이 다 되어가지만, 27일 오전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에서 만난 지관 스님은 아직도 얼굴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스님은 안경이 깨지고 뺨이 3~4㎝ 찢어져 일곱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었다. 다른 부상은 없지만 사건 이후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경찰은 초기 진술에서 쌍방 폭행을 주장하는 파렴치한 짓을 하다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이를 철회했다.


한밤중에 나타난 경찰…‘중놈의 XX가’


지관 스님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느냐”면서도 “그래도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어 용서하기로 했다”며 고소를 취하할 뜻을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8일이다. 김포 용화사 주지인 지관 스님은 이날 밤 10시 방범용으로 기르던 개가 짖는 소리에 바깥으로 나갔다. 용화사 경내지 입구에서 남자 두 명을 발견하고 불빛을 비추면서 ‘누구시냐’고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일단 사찰로 돌아왔지만 밤 12시에 또 개가 짖기 시작했고, 도둑이 아닌지 걱정한 지관 스님은 다시 나가 ‘거기 누구냐’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자 사찰 입구에 있던 남자들은 “중놈의 XX가 왜 밤중에 고함을 지르고 지랄이냐”고 막말을 해댔다. 이에 지관 스님이 쫓아가 ‘왜 밤중에 여기에 있느냐’고 추궁하자, 이들은 주먹으로 스님의 얼굴을 날렸다. 가해자인 의왕경찰서 소속 김아무개 경사와 경기경찰청 전투경찰대 소속 이아무개 경사는 모두 술에 취한 상태였다. 이들은 초기 진술에서 “부부동반 술자리를 마치고 다함께 산책을 갔는데 스님이 먼저 욕을 해서 시비가 붙었다”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후 조계종 총무원 등 불교계가 이에 항의하자, 태도를 바꾸고 잘못을 시인하는 각서를 쓰기도 했다. 지관 스님은 “나 개인으로서는 종교인의 마음으로 용서할 생각인데, 일단 각서를 보고 조계종단과 상의해서 고소를 취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부상은 전치 2주 수준이라서, 사태만 마무리되면 이번 주 중에 퇴원할 예정이다. 불교계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조계종 총무원이 종단 차원에서 대책팀을 구성했고, 불교환경연대ㆍ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 8개 불교단체도 ‘지관 스님 폭행사건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번 사건을 놓고 불교계에서는 “4대강살리기 운동에 대한 탄압일 뿐더러 기독교정권의 불교 모욕”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심야에 경찰들이 지관 스님이 있는 용화사를 일부러 찾아간 배경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대책위는 “현 정부 들어 기관원들의 사찰 출입이 잦아지고 권위주의를 연상시키는 강압적인 통치행태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청장의 공개 사과와 관련자 문책,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지관 스님은 “가해자가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윗선의 개입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 부상에도 불구하고 지관 스님은 4대강살리기운동을 계획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그는 “4대강사업은 불교계 전체의 생명이 걸린 문제라서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면서 “2~3월에 4대강 유역 사찰 및 강 순례, 방생법회를 열 예정”이라고 전했다. 경찰의 폭력은 극에 달해 끝 없는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