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예수를 수 없이 고문하는 이근안

녹색세상 2010. 1. 29. 19:31

     이근안은 예수에 대한 고문을 중단하라!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목사라는 것 자체가 ‘예수를 고문하는 것’입니다. 징역 살면서 예수 믿으며 ‘지난 날의 잘못을 회개하며 산다’기에 설마 했습니다. 그래도 인간인데 출옥하면 조용히 살려니 싶었던 게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비단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젠 노골적으로 ‘난 고문기술자라 아니라 간첩을 잡았다’며 애국자 행세를 하고 다니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이는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한 ‘예수를 수 없이 고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는 당시 인간이 만든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인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지금 이근안의 망발은 예수를 수 없이 고문하고 있는 것임에 분명합니다. 친일고등계 경찰인 노덕술을 이어 대공경찰의 대부라 자처한 박처원을 통해 전수받은 고문기술로 억울한 간첩을 수 없이 만들었습니다. 그 중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을 고문한 것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한 ‘시대의 예수’를 고문한 것입니다.

 


고문 피해자들이 수 없이 많은데 난데없이 이상한 방송에 나와 ‘간첩을 잡았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요. 확인 방법은 간단합니다. 현 정권의 실세인 이재오 권익위원장도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했고, 김근태 전 장관도 고문 피해자이니 불러서 대질만 하면 바로 됩니다. 이근안의 헛소리를 듣고도 현 정권의 실세가 가만히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조용히 있어라’는 한 마디만 하면 바로 찌그러지고 말텐데 말이죠.

 


지금 이 순간도 이근안은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기는 커녕 ‘빨쟁이 잡은 애국자’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습니다. 누군가 짜 놓은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허술한 배우처럼 이근안이 하는 연기는 엉성하기 그지없습니다. 신약성서를 가장 먼저 기록한 바울로는 당시 말썽 많았던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기뻐한다’고 사랑의 정의를 명토박았습니다. 불의와 진리를 구분하지 않는 사랑은 가짜 사랑이라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이근안은 예수를 고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