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일 년 만에 용산에 돌아왔습니다. 불타고 녹슨 망루처럼, 할퀴어진 건물들처럼, 을씨년스러운 겨울바람처럼. 검게 그을리고, 갈가리 찢기고, 차갑게 얼어붙은 남편의 시신이 한 서린 용산에 왔습니다. 2009년 1월 20일, 무엇이 그리 두려웠나요? 왜 시신을 도둑질해서 갈기갈기 찢어놓고 버렸습니까.... 육신을 더럽혔으면 명예라도 깨끗이 씻겨줘야지요, 어찌하여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몰아부쳤답니까? 그 한 많은 영령이 어떻게 눈을 감으라고 이런 잘못을 저질렀답니까.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참사 발생 355일 만에 거행된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고 이성수 씨 부인 권명숙 씨가 오열하고 있다. (사진: 오마이뉴스)
어제 시신을 관에 모셨습니다. 그동안 저 차가운 냉동고에서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요? 위령굿을 지내던 날, 만신님의 입을 빌어 '추워, 추워'라고 절규하던 애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선선합니다. 그동안 하도 많이 울어서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있을까 했는데, 이것이 마지막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왔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지만, 냉동고에 계실 때는 시신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진과 기억으로밖에 볼 수 없는 당신,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당신.....
그 마지막 모습은 왜 그리 가녀리답니까? “아버지가 왜 이렇게 작아? 애기 같아....”라며 아이는 말문을 닫지 못합니다. 정말이지, 화마에 불타서 남편의 다리는 젓가락 같았습니다. 수의를 입혀드리고 흰 천으로 염습을 해도 그 모습은 너무나 왜소했습니다. 다시 한 번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차마 화장은 하지 못했습니다. 불구덩이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다시 한 번 불길로 모시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1년 만에 집에 돌아간다 한들 전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애 아버지 없이 어떻게 생활을 이어갈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돌아갈 집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이 용기를 주셔서 정신과 치료를 마치면 빌딩 청소라도 해서 아이들 가르치겠다고 굳게 마음 먹어봅니다. 하지만 텅 빈 방 한구석에 자리 잡은 내 남편, 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쉽사리 씻을 수야 없겠지요. 다행히도 지난 일 년 동안 아이들이 훌쩍 자랐습니다. 아버지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입대했던 큰 아들이 조문객을 받는 모습을 보니, 정말 이제는 어른이 다 됐구나 하는 생각에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렇게 예쁘게 컸는데, 아빠가 그 모습을 못 보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용산을 뒤로 하고 떠나려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남편의 원혼이 서린 남일당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이렇게 정리하고 떠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호시탐탐 저희가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을 보면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우리가 용산을 떠난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이곳을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지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 이곳에 살았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화려한 용산을 만들겠지요. 반쪽짜리 장례가 아니었다면 한결 마음을 내려놓을 텐데, 가난을 힘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정부, 사람의 목숨 앞에서 자존심 따지는 정부가 너무 야속합니다. 많이 늦고 아쉬운 점이 많지만, 어쨌든 정운찬 총리가 정부를 대표해서 사과하시니 그 마음 고맙게 받겠습니다. 총리가 어제 사과하고 약속하셨듯이, 정부는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시기 바랍니다.
또 너무 섣부른 재개발로 없는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지 않았으면 합니다. 꼭 약속 지켜주세요. 이제 국민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를 드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아서 너무 다행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잊혀 질까 두려웠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 저희 유가족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범대위, 신부님ㆍ수녀님, 목사님, 국회의원님, 문화예술인, 레아식구들, 용산을 잊지 않은 시민들.... 지난 1년간 이 나라 정부가 버린 저희들을, 집도 절도 갈 곳 없는 저희들을, 따뜻이 보살펴주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희 유가족도 여러분 믿고 끝까지 싸워서 그 고마움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2010년 1월 9일 ‘용산참사 철거민’ 유가족을 대표해서 권명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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