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용산 355일 장례’를 치르는 인면수심의 나라!

녹색세상 2010. 1. 8. 19:53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 남일당건물에서 철거민들이 한 겨울 강제 철거에 항의하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한 겨울에 경찰은 협상은 커녕 살인과 같은 물대포를 쏘아대며 밀어 붙였습니다. 그것도 최루액을 잔뜩 섞은 물대포였습니다. 최루탄을 쏜 것 보다 더 잔인한 짓이었습니다. ‘이렇게 쫓겨날 수 없다’며 자신들의 ‘억울한 소리 한 번 들어달라’며 올라간 사람들을 특수임무 수행부대인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진압이 아닌 죽여 버렸습니다. 강제 진압이 아닌 구조였다면 그들은 충분히 살 수 있었습니다.

 

▲ 엄동설한 새벽 추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철거민들이 농성하고 있는 망루에 사정없이 쏘아대는 살인을 저질렀다. 경찰청정 내정자인 김석기의 지휘 하에 백동산 용산서장이 현장 책임을 맡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용산개발의 걸림돌인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제거대상으로 보았습니다. 죽은 사람들의 시신은 가족들조차 알아볼 수 없도록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30년을 같이 산 아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의 시신이 있을 수 있습니까? 불에 타 죽었다는 사람들의 손목이 부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되는 등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린 흔적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책임은 없다’고 하는 지나가던 소가 웃을 소리만 해대었습니다. 그 후 용산은 용역깡패가 기승을 부리고, 경찰은 한 통속이 되어 연일 전쟁을 치렀습니다.

 


유족의 입을 주먹으로 때려 입술이 터지고 치아가 다칠 정도의 현행범을 잡아도 경찰은 수사는 커녕 같은 패거리라고 빼돌리기에 급급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놈은 없는 희한한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정년을 넘긴 늙은 사제 한 분이 용산을 찾아갔습니다. ‘평택에서 뼈를 묻겠다’며 주민들과 같이 살다 밀려난 문정현 신부였습니다. 그는 ‘바로 이 곳에서 5명의 예수가 죽었다’며 고난의 현장 한 가운데 노구를 던졌습니다. 손자뻘 되는 전경들에게 목이 비틀리는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없던 수모를 당하면서 아픔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자 묻힐 뻔 했던 용산학살 사건에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이 함께 하면서 1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족들은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분들이 2009년을 하루 남긴 12월 30일 ‘장례를 치르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진상규명과 구속자 석방과 같은 산적한 문제가 많지만 고인들을 더 이상 차가운 냉동고에 둘 수 없기에 ‘반쪽의 협상’이지만 장례를 치릅니다. 어느 세상에 ‘355일장’이 있는지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도 사람이 죽으면 몇 명 집어넣건만 이명박 정권은 안면몰수로 일관했습니다.

 

 

저는 작년 앞산달비골에서 앞산터널 반대 ‘나무 위 농성’을 하다 이 사건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 역시 철거민의 자식인지라 남들과는 느낌이 다르더군요. 칼 바람이 몰아치는 한강 변의 차가운 용산에서 피눈물도 없이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쏘아대는 장면을 보면서, ‘살고 싶다’며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을 진압하는 경찰특공대의 잔인한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역대 군사독재 정권도 저지르지 않는 짓을 이명박 정권이 자행하는 것을 보면서 ‘끌어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용산개발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삼성을 비롯한 대림ㆍ포스코와 같은 건설재벌이 똬리를 틀고 구경만 하고 있음을 우린 잘 압니다. 지금과 같은 개발 일변도의 정책은 또 다른 용산학살을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생존권이 걸려 있는데 그냥 물러갈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재개발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뉴타운 개발’과 같은 환상이 아닌 집 없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섯 분의 고인과 명령에 의해 진압 과정에서 죽은 경찰특공대원의 명복을 빕니다.


추 가: 용산참사 유족들이 전국 순회를 할 때 대구에서 두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서울 가서 조문을 할 때 마다 억장이 무너지던 게 떠오릅니다. 가장 어려움에 처한 분들과 잠시나마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