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주권운동

경남 거창에서 삽질 반대 민주시민들을 만나고

녹색세상 2009. 11. 30. 19:26

 

일요일 비가 온다고 해서 자전거 주행을 멈추기로 하고 어디로 갈까 고민을 했습니다. 거창에 민주시민들이 모인다는 소식을 보고 댓글을 달았더니 친절하게도 달빛님이 ‘언제 오느냐’고 문자까지 주셨더군요. 자전거로 이동 중이니 시간 약속을 할 수 없어 ‘출발하면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에 홀렸는지 19킬로미터만 가면 되는 거리를 두고 엉뚱하게 방향을 돌려 버렸습니다. 도로 변을 찾았는데 교회가 하나 보여 사정을 말하고 창고에 자전거를 맡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이 천안의 끝 부분인 1번국도 변의 행정리였습니다. ‘어악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요. 천안버스터미널 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다행히 그리 막히지도 않았고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거창 가는 버스를 타는 대전까지 길이 막히지는 않을지 또 걱정이 되더군요. 대전 도착 예정 시간을 확인하고 버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여유 있게 탈 수 있어 안심했습니다.


출발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달빛님이 ‘도착하면 누가 기다리고 있다’며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도착하니 반가운 분들이 맞아주셨습니다. 지역에는 이런 인심이 살아 있어 아직 훈훈합니다. 거창이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민주시민들이 많은 곳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많은 분들이 자리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불고기집을 하는데 토요일 장사가 매출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가게 문을 닫고 부부가 같이 오신 분도 있고, 농민운동을 하는 분도 함께 하셨습니다.

 


피곤한 몸에 술이 몇 잔 들어갔더니 조금 헤맸습니다. 폐교를 아득하게 꾸며 온갖 문화행사로 수련회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탐나는 곳이었습니다. 내부도 잘 꾸며 어지간한 단체의 연수도 충분히 할 수 있겠더군요. 반가운 얼굴을 만난 탓에 이른 새벽까지 즐겁게 보냈습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너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쉽기만 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만났지만 언론소비자 운동을 활성화 하도록 하는 방향도 고민해야 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해 조금 아쉬웠습니다.


전날의 피로가 덜 풀렸는지 해인사 구경을 가는데 졸음이 쏟아져 하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우산이 없다고 사서 챙겨주는 둥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회원도 있었습니다. 해인사에 버스터미널에 대전 행 버스가 있다고 차표까지 끊어주셨습니다. 부지런히 달려 완주하는 게 빚 갚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관광지라 그런지 가게의 호객 행위는 심한 정도가 아니더군요. 거기에다 ‘막걸리 한 잔 하겠다’는 손님에게 대병을 가져오는 횡포도 서슴지 않아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반가운 분들의 배웅을 받으며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전 가까이 와서 갑자기 도로가 막혀 밀리기 시작해 천안 도착이 늦어졌습니다. 늦은데다 천안 도착해 숙소를 구하지 못해 보따리 2개를 들고 한참을 헤맸습니다. 찜질방을 찾아도 안 보이고 이중으로 생고생을 합니다. 밀린 빨래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여관에 갔습니다. ‘인터넷 설치’라는 간판을 보고 바로 들어갔는데 아예 인터넷 접속부터 헤매기 시작하더군요. 빨래는 했고 늦게 방을 바꿔 달라는 소리도 못해 인근 피시방을 갔습니다.


시간을 보니 11시 반이 넘었는데 밀린 숙제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졸린 눈을 비비며 온갖 머리를 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설가도 아닌 처지가 밀린 ‘일일보고서’ 작성이 여간 어렵기 않더군요. 차라리 종일 자전거를 타는 게 편하고 좋지 일과 마치고 지갑에 가득 찬 영수증 챙기랴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가는지 모릅니다. 일요일 아침 늘어지도록  자지 못한 탓인지 허벅지 근육은 굳을 대로 굳어 있어 내일 주행에 지장은 없을지 걱정입니다. (2009. 11. 29일 자전거 일주 38일째 거창을 다녀와서) 

 

추 신: 바로 제 앞에 앉아 계신 내외분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문을 닫고 달려오신 장본인들입니다. ^^ 지역에 이런 민주시민들이 많다는 게 부러웠습니다. 대구와는 분위가 판이하게 달라 샘이 날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