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삽질 반대 자전거 일주 천안에서 헤맨 사연

녹색세상 2009. 11. 30. 01:07

북면골프장 반대 싸움 현장을 찾아


아침에 일어나 북면 골프장 반대 싸움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늦도록 술은 마셨고 가겠다고 약속은 했으니 안 갈 수도 없고 힘든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자전거를 달려 가다보니 그 유명한 ‘천안삼거리’를 지났습니다. 독립기념관도 지나 고개를 4개나 넘어가니 거의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오늘따라 거리는 왜 이리도 먼저 모르겠더군요. 한참을 달리다 보니 자전거 미터기가 1500킬로미터를 넘었습니다. 또 다른 기록갱신을 한 셈이지요. 살다보니 온갖 호사를 다 누리게 됩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그 동네 주민들은 일이 있어 어디 가시고 인근 마을에 사시는 연세 지긋한 분이 길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천안 외과지역의 물 맑은 ‘병천’이란 하천의 발원지에 그 말썽 많은 골프장을 짓겠다고 하니 파렴치의 극을 달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전거로 가면서 골프장을 세 군데나 본 셈입니다. 세상에 천안 같은 지방 도시에 그것도 한 방향에 골프장이 이렇게 많아야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것도 맑은 물이 흐르는 발원지에다.

 

 


길을 안내해 주신 분은 공기업에 근무하다 퇴직하고 공기 맑고 물 좋다고 해서 이사 온지 1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바로 위에 골프장이 들어선다고 하니 너무 황당해 이리저리 자료를 챙기다 보니 거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골프장이나 온갖 이권이 걸린 공사를 할 때 마다 건설회사는 용역깡패를 동원해 주민들에게 공갈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밤이면 누가 와서 돌을 던지고 달아나는 등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는 수법은 한결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않은 동네는 주민들을 이간질 시켜 동네 인심이 흉흉하기 그지없고, 현장을 누군가 들어가면 바로 시공회사에다 일러바친다고 합니다. 그것도 집성촌에 이런 일이 벌어질 정도니 얼마나 사태가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같이 반대 싸움을 하던 주민들이 돌아설 때 받은 상처가 매우 크신 것 같았습니다. 워낙 많이 봐온 사람들이야 막판에는 어떻게 되는 줄 잘 알지만 처음 겪는 분들은 상처기 크기 마련이죠. 특히 같은 동네에서 오래도록 살아왔는데 받는 상처는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종착지인 대전으로 가다 천안으로 돌아온 사연


오늘의 종착지인 대전을 향해 다시 자전거를 밟았습니다. 넘어왔던 큰 고개 2개를 넘어 천안삼거리 쪽에서 1번국도를 타고 달렸습니다. 주말에 비만 안 오면 계속 자전거를 타려고 했는데 전국적으로 온다고 하니 쉬고, 경남 거창에 민주시민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대전 쪽으로 열심히 달리다 시간이 너무 걸려 가까운 곳에 자전거를 맡겨 놓기로 했습니다. 마침 공주 방향 이정표가 보려 ‘공주면 대전이 가까우니 가자’고 해서 방향을 돌렸는데 19킬로미터인 조치원보다 더 먼 25킬로미터였습니다.


거기에다 계속 오르막길이니 파김치가 되지 않을 수 없지요. 이러다간 거창에 못가겠다 싶어 첫 번 내리막길로 내려갔습니다. 아무리 가도 소재지가 안 보여 한참을 헤맸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니 천안 끝 부분인 광덕면행정리였습니다. 거의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죠. 더 늦기 전에 가야하니 자전거 맡길 곳을 찾아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더군요. 마침 교회가 보여 사정을 말하고 자전거를 맡겨 놓았습니다. ‘자전거 여행 중에 이런 일은 처음이다’고 하니 그 교회 목사님이 ‘이런 실수도 있어야 하죠’라기에 같이 웃었습니다.


민주시민들을 만나러 경남거창으로


천안행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오늘따라 버스는 왜 이리 늑장을 부리고, 차는 막히는지 모르겠더군요. 도착해 대전행 버스를 기다리면서 거창 방면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6시 45분 차가 있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1500킬로미터를 넘긴 미터기는 얼마나 더 돌아갔는지 다리 근육이 굳을 대로 굳어있습니다. 조금만 더 달렸더라면 고생 꽤나 할 뻔 했습니다. 거창에 도착하니 반가운 분들이 반겨주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언론소비자 주권운동을 하자’는 민주시민들입니다.

 

 


자전거로 다닌다고 반갑게 맞아주셔 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공기 맑고 물 좋은 거창의 고지대에 자리 잡은 곳에서 주말을 잘 보냈습니다. 민주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모습에서 새로운 것을 보고 느낍니다. 관성에 젖기 쉬운 저를 돌아보게 하는 고마운 삶의 거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늦도록 자지 않고 장난치며 뛰노는 아이들의 해 맑은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추 신: 아침에 술이 덜 깬 게 자전거로 달릴 때는 잘 모르겠던데 차를 타고 같이 골프장 인근을 돌아보는데 졸음이 쏟아져 혼났습니다. 거기에다 얼마나 자전거를 탔는지 일요일까지 허벅지 근육이 풀리지 않아 고민이네요. 제 이마가 저리 넓은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 (2009. 11. 28일 자전거 일주 37일째 거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