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탑니다. 숙소인 사당역 인근에서 경기도 과천으로 가는 관문인 남태령 고개를 넘어 달립니다. 우리 사회의 큰 스승인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이 자신을 가장 낮추는 수행인 오체투지로 넘었던 길을 허물투성이인 제가 자전거로 따라 넘습니다. 그 분들이 경기도에서 넘어 오셨고 저는 서울에서 경기도로 가는 셈이지요. 전날 인터넷을 보고 검색한 곳을 따라가다 보니 바로 ‘1번국도’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더 이상 길 헤매는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과천으로 가는 넓은 도로에 차는 제법 쌩쌩 달립니다. 확장한 모든 국도가 자동차 전용도로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인근 도시가 많아서인지 인도가 제법 잘 닦여있더군요. 달리다 보니 전혀 반갑지 않은 ‘청계산국립호텔’ 간판이 보입니다. 그 앞을 지나는 게 싫어 옆으로 들어서자 언덕길이었습니다. ‘범 피하려다 여우 만난다’는 속담이 전혀 틀리지 않음을 느낍니다. 확장한 만큼이나 이정표는 잘 설치해 보고 따라가면 되도록 좋게 해 놓았더군요.
아침을 좀 일찍 먹은 탓에 촐촐한 배를 채우러 인근 식당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점심시간에 가면 밀려 여유 있게 못 먹을 것 같아 시간을 좀 당겼습니다. 밥을 시켜 놓고 ‘자전거 여행 중이다’며 말을 건네면서 ‘1번국도 방향’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배도 좀 가라앉힐 겸 인근 피시방을 찾아 수원을 지나 화성과 평택 방향 도로를 검색해 중요한 교차로를 적어 놓고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고개가 별로 없어 달리는데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마음 같으면 바로 달려 다음 목적지인 천안으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더군요.
수원에 들어서자 얼마 안 되어 ‘화성’이 보여 잠시 쉴 겸 내려 사진을 찍었습니다. 성곽 구조가 아주 튼튼하게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당사의 건설 기술이 결코 엉성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침략에 대비해 견고하게 만든 지혜와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과연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재다웠습니다. 화성은 축성 당시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 제22대 왕 정조가 선왕 영조에 의해 불운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명당자리인 화산으로 이전하고, 인근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 수원으로 이주시키고 축성했다고 합니다.
또한 화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그 필요를 절감한 수도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당쟁이 극심했던 정치를 쇄신하고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조 자신의 원대한 구상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계획적 신도시로 건설된 것이기도 합니다. 극진한 효심을 바탕으로 군사ㆍ정치ㆍ행정적 목적까지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화성 건설에 당대 동서양의 과학과 기술의 성과가 총결집되었음은 물론입니다. 단원 김홍도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번암 채제공과 실학의 거두 정약용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 화성은 근대 초기 성곽건축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성벽의 외측을 쌓되 내측은 자연의 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축성술, 실학의 영향을 받아 정교하기 그지없습니다. 근대적 기기의 발명과 사용 등 기능성과 과학성, 예술적인 아름다움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조선 시대 절정의 문화적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조들의 기술이 지금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 정교하고 아름다운 축성술에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잘 닦인 1번국도를 따라 신나게 페달을 밟았습니다. 곳곳의 신호등은 잠시 쉬라는 듯 지날 때 마다 걸립니다. 화성을 지나 오산에 들어서니 공군기지가 있는 곳 답게 국도에 비상활주로가 있습니다. 문제는 과속으로 인한 사고 방지를 위해 감시 카메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비상활주로라 설치할 수 없다면 이동식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과속을 방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사고 방지 시설은 하지 않고 사고 나면 모든 것을 ‘운전자 과실’로 덮어씌우고 책임을 묻습니다.
화성까지 시간이 좀 걸리면 기아자동차노동조합에 상근하는 후배에게 하룻밤 신세를 지려 했는데 오산 시내 깊숙이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지나와서 전화하면 괜히 신경 쓰일 것 같아 목적지인 천안까지 갈 수 있을지 판단을 해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조금 무리하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퇴근 시간대에 괜히 사고 날 우려도 있어 물가가 비싼 평택보다는 오산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물가가 싸다고 하지만 낯선 도시라 저녁을 먹으면서 정보를 수집해 바가지 쓰지 않는 곳으로 숙소를 정했습니다. (2009. 11. 26일 자전거 일주 35일째 오산에서)
추 신: 여러분들의 인정사정없는 추천과 펌질 대환영입니다. ^^ 내일은 평택을 지나 천안으로 갑니다. 충남지역을 다니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충남도당에 들러 인사도 하고, 북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골프장반대 싸움 현장에 가 볼 예정입니다. ‘전국 자전거 일주를 충북지역은 하지 않느냐’는 어느 분의 연락이 왔더군요. 주머니 사정은 천안을 지나 대전으로 해서 대구로 가면 딱 되는데 재정이 부족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행태로던 후원만 해 준다면 천안을 지나 청주ㆍ청원, 대전으로 해서 대구로 갈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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