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김준규 검찰총장의 신종 뇌물수법

녹색세상 2009. 11. 8. 13:03

얼마 전 부터 국격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인격, 품격 이라는 말에서 따와서 국격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다면 국격이 높아질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도 있었지만, G20이 아니라 뭘 한다 해도 이 모양으로 하신다면 국격이 높아지기는 커녕 비웃음만 사게 될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드는 건 한두 사람이 아닐 것이다. 검찰총장의 뇌물봉투 심지 뽑기가 신문을 장식하더니 이번에는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골프장 개입파문이란다. 높으신 양반들이 참 여러 가지도 한다.

 


뇌물을 그냥 주면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되셨나보다. 뭔가 신임 검찰총장으로 한건 해야겠는데 잘 안되니까 에라 모르겠다 이거라도 해보자 그런 마음이었나?  아니면 웃을 일 없는 국민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웃게 해 주고 싶어서 그러신 것일까? 근데 웃음보다는 욕이 먼저 나오니 일단 그 작전은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골프장파문만 해도 그렇다.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은 뭐 전혀 그런 일 없다고, 억울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배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고 오이밭에선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마라”는 속담 정도는 알아야 한다.


정말 골프장 파문이 완전 오해라 할지라도, 그만한 자리에 있다면 오해받을 일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온갖 짓은 다하면서 무슨 국격을 말하는지 모를 일이다. 손님 불러놓고 잔치만 잘 치르면 그 집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사고방식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사고방식인지 모르겠다. 그 손님들이 와서 잘 얻어먹고, 가면서는 욕할 거라는 생각은 안하시는지? 남들한테 잘 보일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먼저 만족하고 행복하게 느낄 수 있도록 좀 해주면 안 될까?


무엇보다 김준규 검찰총장과 기자들 간의 돈 봉투 사건을 접하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자괴감이다. 하필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두 집단이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세상 어느 누가 백날 떠들어도 꿈쩍도 안할 집단이다. 법의 잣대는 요리조리 잘 피해갈 것이고, 언론도 침묵을 지켜 국민들 대다수는 상황 파악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의 돈 봉투 사건은 누가 봐도 분명히 ‘나쁜 짓’이지만, 법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검찰이 자신들의 총수를 처벌하겠는가?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김준규 검찰총장의 돈봉투 사건은 △검찰 권력과 언론 권력의 검은 유착 △부정부패 △혈세 낭비 등과 관련된 것으로 범법행위임에 분명하다. 법리적인 문제는 따져봐야겠지만 국민의 혈세로 돈봉투를 돌렸기 때문에 대가성 여부에 따른 ‘뇌물죄’나 ‘공금횡령죄’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가공무원법’ 제61조(청렴의 의무), 제63조(품위유지의 의무)에 해당하는 범죄다. 그러나 법적인 처벌은 어렵다. 검찰이 기소독점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감히 검찰총장을 기소하겠다고 달려들 검사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럼 청와대라도 나서야 하는데 현재까지 침묵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유야무야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하기야 이 정부에서 고위 공직자의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 정답을 기대하는 게 오히려 무리일 수도 있겠다. 대통령, 총리, 법무장관이 모두 범법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검찰총장이 술자리에서 벌인 일까지 나무라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웃고 넘기려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로 이게 웃고 넘길 일인가? 이 사건을 그냥 넘기면 앞으로 교사들의 촌지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돈 봉투 거래는 면죄부를 받게 되어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참으로 불쾌하고 억울한데 글 쓰는 것 말고 해결방법이 안 보인다. 그러던 중 영화 <공공의 적>의 강철중 형사와 검사가 생각났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 검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처음에는 선배와 동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좌충우돌하며 죽도록 매달릴 것이다. 그 과정은 3편의 ‘공공의 적’에 나오는 단순무식하지만 오직 공공의 적을 때려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강철중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도 검사동일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절망하고 말 것이다.


문득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검사와의 대화’ 때 목청 높이던 검사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검찰을 음해하려는 진보세력의 음모라고 생각할까? 그 때 확 바꿨어야 했는데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요즘 검찰은 ‘법질서 바로세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 대문부터 시끌벅적한 로고송이 울려 퍼진다. 애초부터 물 건너간 캠페인이다. 또 담배 꽁초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수준에서 며칠 떠들다 간판 내릴 게 뻔하다. 차라리 그게 얼굴 안 팔리고 속편할지 모르겠다. 지금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대국민 ‘법질서 바로세우기’ 캠페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자정운동이다.


이런 검찰이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이 관계된 100억원 대 비자금 사건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까? 불신이 앞서지만 지켜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했던 것처럼 수사 과정을 수시로 흘리고, 어떤 수사기법을 총동원하는지 눈과 귀를 열고 주목할 것이다. 검찰과 김준규 총장의 마지막 명예가 걸린 사건이다. 법대로 처벌한다면 믿을 것이고, 정치적으로 해결한다면 불신은 깊어질 것이다. 그 때는 정말로 검찰이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명예는 지킨다면 대한민국과 검찰의 품격을 지킬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장례식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다음블로그 인용, 사진: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