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과 인권

제 명에 못 죽는 20대 여성들…왜?

녹색세상 2009. 8. 21. 11:38

‘자살공화국’ 한복판에 그들이 서있는 이유는?


‘자살자’ 수가 남성보다 많은 유일한 세대

취업해도 비정규직…월급마저 성차별 여전


미래에 대한 장밋빛 꿈을 꾸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20대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10년 전보다 전체 자살자가 1.04배 늘어난 것에 비해 20대 여성 자살자는 같은 기간 1.5배가 늘었다. 세계적으로 자살은 여성보다 남성이 2배 정도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 육체적 심리적 특성 때문에 치명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실행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20대의 경우 유독 여성 자살자가 남성보다 많아졌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더욱이 여성들이 남성보다 3~4배 정도 많이 자살 시도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20대 여성 가운데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의 비율은 실제 훨씬 더 많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왜 20대 여성 자살이 최근 1~2년 새 급증한 것일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자살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고정관념을 깨는 여러가지 문제가 깔려 있음을 포착할 수 있다. 이들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심각한 화두는 과연 무엇인지 살펴봤다.


20대 여성 자살만 늘어난다


경찰청이 12일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강기정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10년간 자살 통계를 보면 2008년 전국 자살자는 모두 1만227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7년 1만3407명에 견줘 1100여명이나 줄어든 것으로 200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2005년 이후 경제 불안으로 꾸준히 늘어났던 30~40대와 60대 이상 노년층 자살이 줄어든 덕분이다. 반면 20대 자살자는 1574명으로 2007년 1550명에 오히려 2.3% 늘어났다. 여성 자살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살한 20대 중 여성은 802명, 남성은 772명이었다. 20대 남성 자살자는 전년보다 24명이 줄었고, 여성은 48명이 늘었다. 20대 여성 자살자만 따지면 전년보다 6.4%가 늘어난 것이다.


우리나라 지난해 자살자 중 남녀 비율은 2 대 1로, 세계적인 경향과 비슷했다. 1만2270명 가운데 여성이 4339명으로 남성의 55% 정도였다. 여성 자살자가 가장 많은 60대 이상에서도 지난해 여성 자살자는 1404명으로 남성 2625명의 53% 수준이었다. 자살자가 가장 적은 50대 여성층의 경우는 50대 남성 자살자의 29% 정도에 불과했다. 젊은 여성의 경우 사회적 시선 때문에 자살을 밖으로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제 20대 여성 자살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대 여성 자살이 이렇게 급증한 것은 2005년부터였다. 2000년 20대 여성 자살자는 546명으로 남성 1113명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그러다가 2005년 20대 여성 자살자가 641명으로 전년보다 갑자기 30% 이상 늘면서 남성과 비슷해졌다. 지난해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802명으로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남성 자살자 수를 추월했다. 신고 받고 출동한 수사 기준 통계인 경찰청 자살 통계와 달리 의사가 작성한 사망진단서를 첨부한 사망신고서를 토대로 집계하는 통계청 통계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통계청 집계로는 오히려 한해 더 이른 2007년부터 20대에서 여성 자살자가 남성을 앞선 것으로 나타나 매우 심각한 상태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이 누리집에 공개한 4년간 자살 통계에서 20대 여성 자살률이 20대 남성보다 높은 경우는 2007년이 처음이었다.


꽃다운 한국 20대 여성들이 왜?


20대 여성의 경우 독립해 사는 경우보다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 직접적인 생활고 때문보다는 우울감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선 추측해볼 수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어느 나라나 10대 후반~20대 초반, 60대 이상 여성의 자살자가 많은데 이는 해당 나이에 있을 수 있는 우울감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남녀 자살자 중 여성이 남성과 비슷하거나 많은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을 비롯해 노르웨이, 헝가리(2005년 기준) 정도뿐이며, 대부분 국가에선 남성 자살자의 절반 수준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20대 여성 자살자들의 경우 우울감을 느끼기 쉽다는 20대 초반보다 오히려 20대 후반이 1.5배가량 더 많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통계 미비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살이 아니라 살인 등 강력범죄의 표적이 되어 목숨을 잃은 20대 여성들이 통계 미비로 자살자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한 여성학 전공 교수는 “자살이나 실종으로 처리된 20대 여성 가운데 상당수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 경우가 있어 20대 여성 자살자 통계는 그 자체가 100% 정확하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는 나라가 바로 인도다. 인도는 우리나라처럼 10대 후반과 20대 여성 자살자가 남성만큼이나 많은데 치안 여건과 혼수 지참금 등이 늘 문제가 되는 사회적 특성상 자살인지 타살인지 정확하지 않은 여성 사망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현실이 인도와 다르고, 의사의 사망진단서를 첨부한 시망신고서 기준인 통계청 통계에서도 20대 여성 자살자가 남성보다 많은 점을 고려하면 타살자가 통계상 자살자로 집계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20대 여성 자살은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


20대 여성의 경우 인생에서 가장 감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이고, 일신상 겪는 굵직한 변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때여서 우울감 때문에 자살이 많은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살은 심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반영하는 지표’라고 말한다. 20대 여성이 가장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자살을 많이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사회학이 탄생한 이후 자살을 연구한 학자들은 대부분 자살의 원인을 개인적인 특성보다 사회ㆍ경제적 환경으로 결론지어 왔다. 특히 경제적 환경을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자살 증가율은 1997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2004년 엘지경제연구원은 자살의 원인을 경기침체와 소득 양극화로 해석하고, 소득 상위 10%를 하위 10% 소득으로 나눈 소득 10분위 배율과 자살률의 그래프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1996년 7배에 머물던 소득 10분위 배율이 1998년부터 9.4배로 늘어났고 2000년 이후에도 이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자살률 역시 이와 비례해 증가했다.


김정진 나사렛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고학력 여성일수록 사회적 성취에 대한 압박을 많이 느끼는데, 이런 기대에 반해 20대 여성의 사회진출은 더욱 어렵고 또한 진출해도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현실이어서 박탈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여성 자살자가 가장 많은 60대는 물론 전체 여성층의 경우 경제적 활동을 할 때 자살률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점을 감안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에 대해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 우리나라 20대 여성들의 경제적 활동 현실은 어떨까?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83%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1위다. 하지만 대졸 이상 고학력자 중 일하는 여성의 비율은 59%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 수준이다. 거기다 여성 3명 가운데 2명은 비정규직이며 여성의 월급은 남성의 61% 수준으로 많은 제약과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사회적 불평등 요인과 함께 자살사이트를 통한 동반자살의 증가도 여성 자살을 부추기는 위험요소로 지적하고 있다.


자살을 결심해도 남성들보다 실행에 옮기기를 더 주저하는 편인 여성들이 집단 자살이나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구체적 방법을 배운 것을 계기로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관계자는 “여성들의 경우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은 남자보다 높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확률은 0.005%에 불과하다”며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들어 자살사이트 등의 개설로 자살 실행률이 높아진 것은 분명 여성 자살이 늘어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강요하고 있음을 알지 않으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다. (한겨레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