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과 인권

전교조 “성폭력 사건 조직적 은폐 조장 없었다”고?

녹색세상 2009. 7. 16. 23:51

정권 탄압에 따른 상황과 활동 공적 참작해 경고 징계?


전교조 ‘성폭력 징계 재심위원회’가 민주노총 김상완 성폭력 사건의 전교조 2차 가해자 3인의 징계 재심 과정에서 “성폭력 사건의 조직적 축소ㆍ은폐 조장은 없었다.”고 결론 내리는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재심위는 9일 공개한 재심 결정문에서 “민주노총 진상규명 특위 보고서 중 ‘민주노총 고위 간부와 연루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사건화와 조직적 공론화를 막음으로써 조직적 은폐를 조장했다.’는 보고와 관련해 청구인이 간부이긴 하나 이 사건의 조직적 공론화를 막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를 확인 할 수 없었고, 사건을 축소ㆍ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도모한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재심위는 이에 따라 2차 가해로 제명 징계를 받았던 정진화 전 전교조 위원장, 손 모 씨, 박 모 씨를 두고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에 대해 혐의 없음을 판단한다.”고 결정했다. 재심위는 또 “손 모, 박 모는 최선의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한 책임과 과실, 조합에 끼친 영향을 고려해 경고 처분한다”고 결정했다. 전교조 징계규정에 따르면 ‘경고’ 조치는 ‘업무수행과정에서 주의를 소홀히 하여 조합에 손해를 끼친 자’, ‘권리정지 징계 대상자로서 그 행위가 경미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역력한 자’에 대해 내리는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다. 엄밀히 말해 하나마나한 징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폭력 사건 당시 전교조 위원장이었던 정진화 전 전교조 위원장을 두고는 “성폭력 사건의 정치적 파장과 조직적 타격을 함께 내세움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킨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렸지만 “정권의 총체적 탄압과 관련한 조직의 상황과 조합 활동 공적 등을 참작하여 징계 양정을 감경한다”고 밝혔다. 재심위는 정 전 위원장에게도 경고 처분을 내렸다. 정권의 총체적 탄압과 조합 활동 공적을 참작해 감경한 것도 논란이 예상된다.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항상 논란이 됐던 것은 조직보위론과 조직 내 활동성과를 놓고 판단하는 기준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아직도 군사독재 정권 시절처럼 조직의 보위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은 전교조의 성인지적 관점이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조직을 위해서라면 구성원인 ‘개인의 희생은 얼마든지 감수하라’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권만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전교조마저 거꾸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서글프기 그지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자기 조직의 구성원이 폭력을 당해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의 논란에 휘말린다’는 말로 억압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조직원을 보호하지 않는 조직에 누가 자신을 맡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위, “조직의 책임자가 조직의 이름을 거론하며 은폐 시도”


전교조 재심위는 기본입장으로 “특위 보고서를 신뢰, 존중하고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재심에 임한다.”고 결정문에 밝혔지만 ‘민주노총 성폭력 진상규명 특별위원회’의 결론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어서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진상규명 특위 보고서는 “성폭력을 말하는 피해여성에게 ‘조직’을 거론하는 순간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며 성폭력 사건의 은폐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보고서는 또 “성폭력 사건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이나 정치적 판단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사건의 가시화를 결정한 피해자에게 큰 압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덧붙였다.


지난 3월 13일 진상규명 특위 기자회견에서 김인숙 특위 위원(민변여성인권위원회)은 “민주노총 차원의 조직적 은폐 시도라기보다는 조직의 간부가 조직의 이름을 거론하며 은폐 시도를 했기에 조직적 은폐시도라 명명한 것”이라고 조직적 은폐 시도를 설명한 바 있다. 당시 엄혜진 특위 위원(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도 “이 사건이 이석행 위원장의 은신처 제공과 관련한 급박한 정치활동의 과정으로 민주노총과 소속인 전교조에서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위원장이 대책 마련과 사건해결에 나서지 않은 점이 조직적 은폐로 규정하게 된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특위 위원들과 보고서가 조직적 은폐라고 규정을 내렸고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도 조직적 은폐의 의미를 받아들여 전교조에 징계를 권고했지만 전교조에서 결론이 뒤집힌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결정은 피해자의 의견과 정진화 전 위원장의 의견이 전혀 다른 가운데 정진화 전 위원장의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는 데서도 논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 해결 원칙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은폐 당사자가 의견서를 게시판에 공개하고, 이를 전면 부인하는 피해자도 재심위에 의견서를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진화 전 위원장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피해자 의견서도 부인한 꼴…민주노총으로 파장 커질 듯


지난 5월 8일 정 전 위원장은 공개 의견서를 내고 “2차 가해, 또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직적 은폐를 조장한 것으로 규정하여 법적 책임을 묻는 피해자 대리인 기자회견(2월 5일),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 기자회견(3월 13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결과(3월 19일), 전교조 성폭력징계위원회 결과(4월 22일)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심정을 드러낸 바 있다. 진상규명 특위 보고서와 보고서를 채택한 민주노총 중집 결정을 모두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특위의 가장 큰 결정은 전교조 2차 가해자들의 행위가 조직보위론에 입각한 조직적 은폐를 조장 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또한 정 전 위원장은 피해자를 두 번 만나 한 얘기를 자신의 의견서에 담음으로써 피해자와 진실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6월 30일 재심 결정이 난 후 7월 7일 피해자가 공개한 의견서는 정 전 위원장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이 의견서에서 “정 전 위원장의 진술은 기본적인 사실 관계에도 부합하지 않는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노총 소속의 한 여성활동가는 “전교조 전 위원장의 의견은 받아들여졌고 피해자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피해자가 이 결정으로 어떤 고통을 받을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이번 재심위 결과는 다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 논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또 다른 민주노총 소속 여성 활동가는 “이번 결정은 반성폭력 운동을 전부 무로 돌리는 결정”이라며 “외부 단위까지 함께한 특위 보고서와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 결정을 무시하고, ‘성평등 미래위원회’를 건설하려는 취지마저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교조도 참석하는 민주노총 중집에서 7시간 동안 토론해 진상규명 보고서를 채택한 것이고 대의원 대회에서 후속조치까지 논의한 사안이기 때문에 중집이 책임을 지고 후속조치를 점검하겠다는 사실을 잠정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4월 1일 대의원 대회에서 몇몇 대의원이 ‘성평등 미래위원회’ 설치를 반대하자 비대위 위원장직과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 사퇴를 걸기도 했다. 당시 성폭력 사건의 후속조치는 민주노총의 운명이 걸릴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었다. 피해자는 민주노총에 보낸 편지에서 “민주노총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하며 금전 보상은 정중히 사양하고 그 마음만 받겠다.”고 전했다. 피해자는 이어 “저는 이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노총 조합원이기도 하다”면서 “조합원으로서 민주노총이 저에 대한 보상보다는 일정액수를 성 평등 사업 예산에 책정해 안정적 성 평등 사업을 해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징계 수위를 낮추면서 “성폭력 사건의 정치적 파장과 조직적 타격을 함께 내세움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킨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결론은 내렸다. 그러면서 “정권의 총체적 탄압과 관련한 조직의 상황과 조합 활동 공적 등을 참작하여 징계 양정을 감경한다”고 한 것은 마치 재벌에게 하는 재판과 너무 흡사하다. 이는 피해자 중심주의와는 너무 거리 먼 무책임한 결정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성 평등은 인간 평등의 처음이자 마지막’임을 명심해야 한다. 위원장이라는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2차 가해자의 조합 활동에 기여한 바가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이유라면 누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제 발등 찍었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다. (참세상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