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망 확충’은 건설마피아가 손 댈 수 있는 유일한 ‘토건사업’
지난 7월 6일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대에 일어난 경의선 사고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서울 충정로역 인근 아파트 건설 공사장에 설치된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서 옆의 철길을 덮쳤고, 경의선 구간이 마비된 것은 물론 서울역으로 가는 전력선도 끊기면서 철도수송이 연쇄 마비에 빠져들었다. 사고 수습에 한나절이 넘게 걸렸고 곳곳에서 열차 지연, 환불 사태가 벌어졌다. 이 유래없는 사고는 얼핏 철도 교통의 약점을 드러낸 것 같다. 철도는 점과 점을 선으로 잇는 구조가 본질이다. 선의 일부라도 막히면 전체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복선이나 복복선으로 이를 보강하더라도 본질은 변화가 없다.
▲ 7월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 충림 재건축아파트 공사장에서 목재를 올리던 중 50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이 경의선 철길로 넘어지면서 크레인 기사가 사망하고, 경부선과 경의선 운행이 중단되는 이 사고로 전 철도가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정도로 철도는 허술하다.(사진:오마이뉴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보면 철도가 갖는 장점의 원천이다. 철도의 핵심인 선인 레일은 그래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안정적인만큼 이 선은 많은 사람과 물류를 빠르고 안전하고 저렴하게 수송한다. 때문에 이 철도는 그야말로 사회간접자본으로 공공적으로 건설하고 유지해야 하며, 선을 이용하는 순서까지 정책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건설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도 민영화를 시도한 모든 나라가 대형 사고가 속출하고 있는 것은 자본에 넘기는 순간 돈벌이 때문에 사회 기반시설이 아닌 장사로 둔갑하고 만다는 단적인 증거다.
철도가 공공재가 되어야 하는 이유
반면에 도로는 점과 점을 면으로 잇는다, 아니 그 자체가 면이다. 이 이차원 공간 위에서 차량들이 알아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시스템이다. 도로 역시 공공적으로 건설되고 유지되지만, 운전자들은 모두 경쟁에서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들이 된다. 도로가 막히면 이 개인들은 다른 면을 찾아 돌아가면 된다. 우회의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도로라는 면은 그만큼 국토를 잡아먹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도로는 다른 이동 수단과 공존하지 못하는 배타성을 갖는다. 자전거도, 사람도, 다람쥐도, 그들 사이의 관계도 이 이차원 면 앞에서 끊겨버린다.
철도는 칭송할만한 다른 여러 미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누구에게는 추억이 되고 정취가 되며, 삶의 자리가 되어 왔다. 요즈음에는 녹색 바람을 타고 철도가 다시 각광을 받는다. 반가운 일이고 온당한 움직임이다. 한 사람을 1km 수송할 경우 필요한 에너지를 비교하면 철도는 승용차 보다 1/8 가량으로 적고, 화물의 경우 1/14로 더욱 적다.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비교해도 사람 수송은 1/6, 화물 수송은 1/13이다. 녹색성장을 외치는 정부도 철도 르네상스를 운운하는 까닭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철도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이게 느낌이 먼 것 같다. 철도 환경이 실제로 좋아지기나 했나 하는 의심마저 드는 것은 KTX가 뚫리면서 서울-부산, 서울-목포 간 이동 시간이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역사가 개선된 것 말고는 좋아진 게 실은 없기 때문이다. KTX가 위주로 추진되면서 비둘기호에 이어 통일호가 사라졌고, 대체할 편이 없는 만큼 요금은 인상되어 국민들의 이동권은 박탈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용자가 줄고 인건비가 부담된다는 이유로 시골 간이역은 하나 둘 폐쇄되었다. 철도에 얽힌 우리들의 추억은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것은 ‘돈 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몇 달 전 충북 옥천의 지탄역이 주민들이 각고의 노력을 펼친 끝에 폐쇄를 면하고 열차가 계속 서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보도된 바 있는데, 사실 이는 미담이라기보다는 간이역이라는 생명줄이 말라가는 구조조정의 처절한 증거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아주 단순하게도 철도에 대한 투자 부진 때문이다.
고속철도와 대도시 광역철도를 제외하면, 해방 전에 놓여진 간선철도망은 연장된 게 거의 없고 오히려 교외선은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곳곳에서 폐선되고 있다. 궤도의 총 연장은 늘어났지만 예컨대 포항에서 목포로 갈 수 있는 철도 수단은 수 십년 째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국토 사정이 비슷한 영국, 스웨덴 같은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의 철도연장 보급률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가 기반시설이자 사회간접자본인 철도를 민영화 시켜 재벌에게 팔아넘기려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은 노무현 정권 때다.
아직도 비정규직 문제로 세월없는 법정 싸움을 하고 있는 KTX여승무원들에 대한 고용 문제 역시 노무현 정권 때 발생했다. 그러면서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을 하려고 시도했으니 정책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5개년 계획에도 어김없이 철도가 등장했다. 2009년 18%인 철도 여객분담률을 2013년까지 22퍼센트로 상승시키고, 대중교통 분담율도 50%에서 55%까지 올리겠다는 녹색국토와 교통 조성 방안이다.
건설 마피아들이여 운하 대신 철도망을 확충하라
그러나 여기에도 기존 노선을 효율화하겠다는 계획 이외의 간선철도망 연장 계획은 없다. 코레일이 발표한 ‘에코레일 2015’ 추진 계획에 따르면 철도수송 분담률을 현재 보다 두 배 늘리기 위해 42조원을 투입한다고 하지만, 이 돈을 누가 언제 투자할지는 알 수 없다. 4대강 정비에 22조원을 써야 하는 게 우선일 텐데, 신규철도망 투자 재원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
이럴 때 건설마파이들이 힘을 모아 정권에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 멀쩡한 강을 건드려 욕 얻어먹지 말고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철도 확충을 한다면 칭찬과 박수를 받을 것이다. 철도의 또 하나의 본질은 연결로 연결의 자원이 많아질수록 전체의 힘이 커지는 망 효과를 갖는다. 간선끼리 연결이 되고 지선이 많아질수록 망 효과는 상승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된다. 해방 이후 한국은 이 연결망을 키우는 것과 정반대의 길인 도로 왕국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도 나이 든 사람들이 총질로 권력을 잡은 다까끼 마사오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철도 외면으로 이어져 도로 확충 정책의 틀로 굳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그렇지만 세월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는 것은 도로 건설 마피아와 자동차 산업 세력 앞에서 철도 종사자들이 너무 얌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전히 한국에서 유일하게 할 만한 ‘토건형 뉴딜 사업’이 있다면 가히 혁명적인 철도망 확충 사업이다.
기후변화의 위기 앞에서, 철도라는 선 위에 함께 모여 열심히 궁리하고 머리를 짜 내어야 한다. 경의선을 연결하고 북한을 지나 만주 벌판을 통과해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도는 남북이 상생하는 가장 안전하고 수익을 보장받는 사업이다. 미제 무기 못 사서 환장한 인간들이 들먹이는 ‘안보’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다.
북한은 철도 기반 시설이 취약해 당장 남한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남한의 뛰어난 건설기술이 서로 만난다면 더 이상 좋은 게 없다. 토건공화국의 건설 마피아들이여, 철도 건설에 뛰어 들면 당신들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산다. 이명박 정권의 건설 정책과 대북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먹이를 키우면 얼마던지 가능하다. 건설자본의 노예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명박 정권이기에 더 쉬운 일이다. (레디앙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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