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민중

옥쇄 투쟁 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자 ‘허깨비’와의 싸움

녹색세상 2009. 6. 9. 23:59
 

상하이차는 손 떼고 정부는 방관…경찰 투입 땐 참사 우려


쌍용차 경영진은 지난 6월3일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경영위기를 타개하자는 노조의 제안을 끝내 거부하고 공권력 투입 의사를 밝혔다. 회사는 하루 앞서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노동자들 중 1100명에게 이들이 정리해고 명단에 들어 있음을 우편으로 통보했다. 쌍용차는 희망퇴직 신청 기한을 6월5일까지 연장하면서, 우편물을 받은 정리해고 대상자가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퇴직금과 근속연수에 따라 5~9개월치 월급을 추가로 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리해고가 확정됐으니, 퇴직금이라도 좀 더 받아가게 희망퇴직을 신청하라는 뜻이다. 쌍용차 공장을 지키던 사람들의 운명은 ‘산 자’와 ‘죽은 자’로 확연하게 갈렸다.

 

▲ 노조가 공장 점거 파업 중인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정리해고 박살내자’등의 구호가 적힌 컨테이너 위에 올라서 있다. (사진: 한겨레21)


6월3일 밤 경기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쌍용가족대책위의 촛불집회까지 끝나고 고요해진 공장 구석구석에서는 ‘끝까지 싸우겠다’는 다짐과 ‘비상구가 없다’는 절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공장 정문을 지키는 선봉대인 이아무개씨에게 직장 동료 두 명이 찾아왔다. 3년째 이씨와 상조회를 함께해온 동료들은 “죽은 놈이 죽을 놈을 위로하러 온 셈”이라고 말했다. 셋 중 큰형 격인 양아무개씨는 쌍용차 사내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지난해 11월 권고 사직했고, 둘째인 박아무개씨는 한 주 전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투쟁한다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다 공허한 짓”이라는 양씨의 말에, 이씨는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는데, 쌍용차가 왜 이렇게 됐는지라도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고 맞섰다. 이씨에게는 소주만큼이나 통닭 안주가 씁쓰레했을 것이다.

 


조업 단축을 거듭하는 회사의 미래가 불안했던 이씨는 지난해 4월 부업으로 통닭집을 차렸다가 여섯 달 만에 접었다. “불쌍한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조류독감이 닥치면서 하루 한두 마리 팔기도 버거웠다”고 그는 돌이켰다. 두 동생 사이에 싸움이라도 붙을까 양씨가 말머리를 돌렸다. “저기 굴뚝 위에 누가 알록달록 전구를 달아놨을까? 꼭 크리스마스트리 같네. 저기 올라간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올라갔는데….” 굴뚝 앞 촛불집회를 마치자, 가장을 공장에 남겨둔 아내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이날 남편이 정리해고 대상임을 우편으로 통보받은 이정숙 씨는 “이젠 화낼 힘도 없다”고 말문을 뗐다.


공장 총무팀에서 13년을 일해 온 남편은 지난 1월부터 집으로 한 달에 50만원도 가져오지 못했다. 아들들 앞으로 넣어둔 보험을 해약하고, 마이너스통장을 동원해도 가계부에는 온통 빨간 글씨투성이였다. 이씨는 지난 5월23일에는 3년 전 남편 명의로 구입했던 24평 아파트를 내놓고 전세로 옮겼다. 이씨는 그 아파트가 자신이 남편에게 준 공로패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일찍 결혼한 남편은 두 아이를 키우느라 한눈 팔 틈도 없었다”면서 “10년 근속사원 공로패를 받아온 걸 보고, 고생하셨다는 가족들 마음을 담아 남편 이름 앞으로 산 아파트였는데 그걸 팔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쌍용차는 한때 잘나갔다. 노조 사무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박아무개씨는 “남들은 IMF 때 힘들었다지만 쌍용차는 연간 순이익만 4천억원 이상 올렸다”고 돌아봤다. 당시엔 이익금의 30%는 공장 운영 자금으로 쓰고, 40%는 신차개발비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직원들의 성과급으로 돌아왔다. “주간근무 때도 밤 11시까지 일해야 할 만큼 일손이 달려 쩔쩔매던 시절이었다.”면서 “나중에 회사를 인수한 상하이차가 신차 개발을 위한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람에 쌍용차는 몰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노조는 그동안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세 가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동안 신차 개발 비용의 10%에 불과한 라이선스 계약금 240억원만 쌍용차에 지급하고 ‘카이런’ 생산라인을 중국에 세우는 등 ‘쌍용차 기술 빼먹기’로 의심할 만한 행태를 보여 왔다.


애초 인수할 때 천명한 매년 3천억원 수준의 투자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2005년 인수 때 유동자산 7424억원, 이익잉여금 6010억원에 이르렀던 알짜 기업 쌍용차는 4년 만에 부도가 나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쌍용차 문제의 핵심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 상하이차는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고, 앞으로 감자와 출자전환을 겪고 나면 소액주주로만 남게 된다. 현대차 출신인 이유일 관리인은 “수년간의 쌍용차 경영 상황을 검토해본 결과 답답한 일이 참으로 많았더라”면서 “하지만 지금 상황은 채권단과 빚을 진 쌍용차라는 채무자만 남은 상태”라고 말했다. ‘기술 먹튀’ 논란을 부른 상하이차와 그 인수ㆍ합병을 승인한 정부는 쏙 빠진 셈이다. 그래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싸움은 허깨비와의 씨름인지도 모른다.


내려오는 비상구 막고 배수진


한 노조 관계자는 “희망퇴직을 신청한 1500명 중 1300명은 인력 정리 기준에 포함됐으니 1천만원이라도 더 챙겨가라는 회사 쪽 압박에 넘어간 사람들”이라며 “지금 공장을 사수하고 있는 사람들 중 99%도 최근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공장에 남은 노동자들의 마음가짐은 결연할 수밖에 없을 터다. 도장부 공장 근처 굴뚝을 올려다보면 70m 고공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김을래 부지부장과 이 지부 소속 구로정비지회 김봉민 부지회장, 비정규직지회 서맹섭 부지회장 등 3명은 지난 5월13일 굴뚝에 올라갔다. ‘정리해고 철회 없인 살아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적힌 펼침막의 다짐 그대로, 지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비상구는 용접으로 봉쇄해버렸다.

 

 

이 세 사람은 비닐 천막을 친 1평 남짓한 원형 감옥에서 웅크린 채 밥을 먹고 잠을 잔다. 김봉민 부지회장은 전화 통화에서 “공장 안에는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온 동지들이 많다. 집행부는 마지막 판단을 자제해달라고 주문하지만, 격한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쌍용차 경영진이 공권력 투입 의사를 밝힌 6월3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민주노동당 등 22개 정당 및 시민단체가 쌍용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범국민 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극한 충돌이 발생하기 전에 쌍용차 노사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해보고 상생의 해결 방안을 찾자는 목소리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범대위 공동대표인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정부가 쌍용차 사태를 방관만 하는 이 상황은 불이 났는데도 소방차가 안 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쌍용차 노조가 인화 물질이 많은 도장부를 장악한 까닭에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하려 할 경우 대형 참사가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러나 정부는 쌍용차를 노사관계 힘겨루기의 시험대라는 생각을 갖고 밀어붙이려는 게 아닌지 불안하다”고 밝혔다. 생사가 걸린 문제 해결에 정부가 뒷짐 지고 있는 것만큼 무책임한 것은 없다. 노조원들과 가족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알아서 죽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겨레21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