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진 검사는 80년대 ‘학생 때려잡기’로 유명했던 악질 공안검사였다. 80년대 민주화 투쟁현장을 누볐던 젊은이들에게는 악독한 이름이다. 임채진이 검찰총장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중요한 자산 중에는 이 시절의 가혹한 민주주의 탄압이라는 화려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를 검찰총장에 임명한 노무현 정권의 한계를 증명하는 가늠자이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임채진 검사에게는 ‘친자본’과 ‘반자본주의’라는 수식어를 동시에 붙일 수 있다. 친자본은 ‘친자본주의’와 구별된다. 그야말로 ‘자본가’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말이다. 임채진 검사는 검찰총장 선임 당시 김용철 변호사로부터 삼성 떡값을 줄기차게 받은 대표적인 인사로 거명됐다. 반민주주의 한국에서 엘리트의 필수 코스인 독재정부에 대한 충성, 삼성에 대한 충성 과정을 탄탄하게 밟아왔다는 뜻이다.
비록 본인이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극구 부인하기는 했지만, 떡값인사를 폭로한 삼성 김용철 변호사를 기소하거나 고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임채진 검사가 떡값을 받지 않았다고 한 발언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반자본주의’라는 것은 떡값을 받고 삼성에 유리하게 법 적용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정한 룰이 생명인 자본주의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은 우리나라 인맥을 다 먹어치우고 공정한 시장 게임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 반자본주의의 상징인데, 반자본주의의 상징에 충성을 맹세한 임채진 검사는 반자본주의 대표인사라고 할 수 있다.
임채진 검사 개인만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은 그것이 대한민국 출세한 자들의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니까. 법복을 입은 임채진 검찰총장이 바로 이 시대의 전형적인 성공 사례다. 난세에 소신을 지키며 법복을 입고 있기는 어렵지만 법복으로 몸과 마음의 눈을 가리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기는 쉽다. 우리나라가 이 꼴이 된 이유는 난세에 법복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보다, 난세에 법복으로 눈을 가린 사람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법체계의 구조가 바뀌지 않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행동으로 발휘되지 않는 한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반민주 정부에서 퇴출당한 반민주 검사 사례가 주는 교훈
임채진은 끈질긴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4대 권력기관장 중에서 유일하게 유임된 사람이 바로 임채진 검찰총장이다. 그 과정을 보면 암투도 그런 암투가 없다. 올해 초 국세청장 ‘그림 로비’ 파문이 일어나 국세청장이 사퇴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시사IN은 이를 4대 사정기관장(국정원장, 경찰청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간의 암투로 해석했다. 한상률 국세청장이 대통령 측근과 골프를 치고 친인척과 식사를 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은 다른 권력기관에서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대 사정기관장 중 올해 초 인사에서 한두 명만 살아남는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서로 물어뜯기 식의 피 터지는 싸움을 벌였다. 이 게임에서 조연으로 등장해 주연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곳은 바로 검찰이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한 4대 사정기관장의 상호 견제는 다른 기관장 뒷조사하는 정황이 포착되기까지 하는 등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달았다. 기관장들에 대한 각종 유언비어가 나돌기 시작했고, ‘박연차 리스트’를 놓고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국세청 측이 자료를 검찰에 제공하지 않고 이를 가지고 언론에 제보를 한다는 것이었다. 4대 권력기관장의 상호 견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악의적으로 언론에 정보를 흘리고 인사에서 떨어뜨리려는 지저분한 권모술수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준이 된다면 문제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개싸움이 돼버린 상황을 방치했다. 청와대가 교통정리를 했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수 있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임채진 검찰총장의 잔여임기는 5개월 남짓이다. 그런데도 그가 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고, 사의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청와대가 그래도 구색 맞추기로 1번은 반려 했다가 사퇴를 수락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이번 사태가 주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서 지금도 영혼을 팔고 충성경쟁을 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충성경쟁을 심하게 하면 임채진 꼴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다. 자신의 처지도 봐가면서 충성을 해야 한다. 충성을 열심히 하면 청와대는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사태가 좋지 않게 흘러가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최고 권력자는 이럴 때 가장 먼저 날려 버리는 게 충성서열 1순위 인사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정치검사라는 오명을 검찰집단에 안기면서까지 과열충성을 한 충성서열 1순위인데도, 이번에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에 즐비한 MB 충성파들은 숙청1순위로 전락하기 전에 적당히 충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명철보신(明哲保身 : 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일을 잘 처리하여 자기 몸을 보존함)이라는 말은 이때 쓰는 게 아닐까? 영혼을 팔아 정권이 바뀌면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온갖 충성을 해 본들 자신이 불리하면 언제든지 차 버리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어청수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나친 충성은 큰 코 다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진: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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