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노무현 추모 대신 민중생존을 향한 눈물을.....

녹색세상 2009. 6. 5. 11:45

 

 

 

직장 폐쇄에 맞서 옥쇄 투쟁 중인 쌍용자동차 노조원 가족들의 피눈물 흘리는 영상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 흘렸습니다. “생존권이 걸린 문제고 밥그릇이 달린 문제이기에 그냥 물러설 수 없다. 이 정당한 싸움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울먹임에 같이 울었습니다. 자신의 직접적인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우다가 하나 뿐인 목숨을 스스로 끊은 운수노동자 박종태 님의 죽음 소식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맘껏 울었습니다. 같이 울고 슬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쉰 줄에 들어 선 늙다리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그냥 울었습니다. 이런 인간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란 소식을 듣고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조문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형님, 사람이 죽었는데 문상은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후배의 말을 듣고 ‘인간 노무현에 대한 애도’만 하고 그냥 왔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을 자살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의혹이 있어 저는 ‘의문사’로 봅니다. 최초로 간 세영병원 응급실의 폐쇄회로 녹화와 진료 기록과 양산부산대병원의 진료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한 의문사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설사 자살이라 할지라도 이명박 정권에 의한 ‘정치적인 타살’임에 분명합니다. ‘독재의 유전자’를 타고 난 이 권력의 속성 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개인이 아닌 정치인 노무현의 비중이 너무 크기에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치를 떨며 싫어합니다.

 

 

▲이랜드 노동자들이 3일째 재 점거 농성중인 서울 서초구 뉴코아 강남점에 2007년 7월 31일 새벽 경찰이 들어와 강제해산에 나서자 노조원들이 팔짱을 낀 채 드러누워 저항하다 끌려 나오고 있다. (사진:한겨레신문)


‘제2의 경술국치’라고 부르는 ‘한미FTA협상’을 남이 아닌 대통령이 들고 나와 밀어 붙이는 것을 보고 ‘노무현 정권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청와대 정책실장이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소득분배론’의 권위자인 이정우 박사는 ‘이건 아니다’며 자리를 박차고 대학으로 돌아왔습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의정활동을 위해 어디라도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담장인 신라호텔에 접근은 커녕 얼씬도 하지 못하게 경찰병력으로 봉쇄해 버렸습니다. 장관에 준하는 예우를 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숙투쟁을 할 때 예우는 커녕 경찰버스 매연을 마시게 하는 수모까지 주었습니다. 비정규직 관련법은 386 출신의 김영춘이 발의하고 노동운동을 한 이목희가 밀어붙여 ‘아는 놈이 더 도둑놈’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대통령과의 대화’를 들고 나온 검찰이었지만 나중에는 권력의 입맛에 맞게 알아서 긴 전형적인 정치검찰 짓거리를 자행해 ‘독재의 유전자’를 타고 난 집단임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경찰의 폭력은 노무현 정권 역시 이명박 못지않게 심했습니다. 파업 현장에 경찰 병력 투입은 기본이고 농민 사망 사건에서 보듯이 사고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칠순 노인을 방패로 사정없이 찍어 버렸습니다. 권력의 묵인이나 지시 없이 가능하다고 보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사과는 했으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하지 않았습니다. 2007년 민중대회 원천 봉쇄를 위해 대한민국 전 경찰이 동원되었습니다. 전국 서장회의까지 열어가면서 막는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고속도로  진입로 수백 미터 앞부터 곳곳에 경찰병력을 배치했으며, 농민들의 상경 투쟁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서 버스를 가로막는 등 상식 이하의 짓을 자행해 ‘이동권 방해’로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얼마 전 있었습니다. 노무현이 불을 질렀다면 이명박은 시너를 갖다 부었을 뿐입니다. 정말 반민중적인 정책을 앞장서서 저지른 노무현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용산 학살과 같은 사건이 규모만 작았을 뿐 노무현 정권 때도 곳곳에서 벌어져 노무현 입으로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할 정도로 친재벌 정책을 폈습니다. 당선 후 ‘인수위원회 보고서와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를 같이 두고 봤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였습니다.

 

 

▲ 강제집행은 문자 그대로 ‘토끼사냥’이었다. 미처 건물 안으로 피하지 못한 청년들은 경찰에 포위된 상태에서 방패와 몽둥이세례를 받아야 했다. ‘제발, 응급환자를 후송하게 해 달라.’는 절규도 이어졌으나 노무현 정권의 지시를 받은 군대와 경찰은 철저히 무시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양키전쟁기지 확장’ 저지를 위해 평택 대추리에서 싸울 때 비상계엄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특수부대 병력을 투입해 진압하는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승인했습니다.  여성운동을 했다는 한명숙은 국무총리로서 ‘이건 아니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서명했으니 ‘그 나물의 그 밥’임에 분명합니다. 국방부 장관인 윤광웅은 “우린 군은 주민들과 직접적인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반의 조치를 취할 것이며, 주민들을 제압하기 위한 군 병력 투입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말해 놓고는 진압작전을 했으니 국민을 상대로 대통령이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임종인 의원 말고 집권당 의원 중 반대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난 386의장님 출신의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침묵할 정도로 대통령 노무현의 권력은 막강했습니다.

 

 

경찰에 끌려가는 한 시민단체 소속 여성은 웃옷이 모두 벗겨질 정도로 평택 대추리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습니다. 보다 못한 취재진이 해당 경찰관에게 소속을 묻자 곧장 달아났고 연이어 취재기자들도 뭇매를 맞았습니다. 경향신문’ 사진부 김 모 기자는 곤봉으로 머리를 맞았는데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으나 경찰 5명은 그를 대추분교 별관 공터로 끌고 가 방패로 찍고 군홧발로 짓밟아 버렸습니다. ‘한겨레 21’ 길윤형 기자와 ‘로이터통신’ 기자도 경찰의 폭력에 얼굴이 찢기고 머리가 깨졌을 정도로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부상자 14명이 농협창고 마당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조치는 전혀 없었습니다. 위험한 작전을 펴면서 119구급차 조차 대기시키지 않을 정도로 그냥 깔아 뭉개버렸습니다. 주민들은 집에서 가져온 헝겊 쪼가리로 흘러내리는 피를 막고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학교 건물로 물러서는 시위대를 방패로 위협하며 줄곧 몰아붙이던 경찰 대오에서는 “무조건 까버려. 깔아뭉개!”라는 고함이 계속 터져 나왔으니 권력 상층부의 지시나 묵인없이 저지른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라크 파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이익을 위해 파병한다고 했는데 집이 좀 살기 어렵다고 부모가 되어 젊디젊은 자식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까지 살아야 합니까? 내전 중이라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곳에 가야할 정도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그리도 궁핍한가요? 정말 국가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수억의 아랍인들과 관계 개선을 해 석유를 확보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더 큰 이익임을 모른다면 바보천치임에 분명합니다.

 

 

2007년 이랜드 파업 때 끌려 나가던 여성유통 노동자들을 보고 눈물 흘리고, 운수노동자 박종태의 자살 소식에 그냥 울었고, 옥쇄 파업 투쟁 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자 가족들의 울먹이는 모습을 보고 울었지만 노무현의 죽음에 눈물 흘리지지 않은 것은 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자살은 타살’이라는 말처럼 이명박 정권에 의한 정치적 타살임에 분명하지만 마냥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개인의 죽음에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도리지만 정치인의 죽음은 다르게 봐야 한다고 봅니다. 노무현 추모 행렬은 이명박을 향한 분노의 표시입니다. 이제 우리가 슬퍼하고 분노해야 할 곳은 옥쇄투쟁 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곳곳에 깔려 있는 지뢰처럼 폭발 직전의 또 다른 용산학살과 민중들의 참혹하고도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