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은 변화 발전한다’는 철학의 기본 명제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주위를 살펴보면 세월이 흐르면서 ‘저 사람 변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변하게 마련이지만 작가 황석영의 최근 변신은 정말 놀라움을 뛰어 넘어 ‘확실한 구라’를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황석영은 사회 비판이나 진보적 가치에 목소리를 높이며 소설로 쓰며 활동한 대표적인 문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용산학살, 비정규직 양산과 무너져가는 신자유주의를 붙들고 마지막 지사 노릇을 못해 발악을 하는 이명박 정부에 야합을 하다니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다. 극우정권이 들어선지 2년도 되지 않았는데 변절이 이토록 빠를 줄 몰랐다면 우리가 너무 순진하다. 권력이 주는 단맛을 모르지 않으니 ‘황석영의 변신은 무죄’라고 불러도 별 손색이 없는가?
기사를 보니 황석영이 ‘유라시아 특임대사’로 이미 내정이 되었다고 하던데 이런 감투 하나 뒤집어쓰려고 그간 자신이 쌓아온 사상을 길바닥에 내팽개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글쟁이는 무릇 독자들의 사랑과 후원을 받으며 커가는 사람이다. 이번 사건은 줄곧 그의 작품에 담긴 사회비판과 진보적 가치를 좋아해서 황석영을 좋아했던 독자를 배신한 아주 파렴치한 짓거리다. 그는 이명박 우파정권을 ‘중도실용’이라는 구라까지 쳐 가며 자신의 변신을 정당화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가 한겨레와 했던 인터뷰를 보면서 그의 팬들이 수긍하며 이해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심경 변화를 밝혔다면 편하게 보내줄 수 있을지 모르나 변절자들 중 그런 인간을 한 놈도 보지 못했다.
독자의 생각을 대변해줄 뭔가를 창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가는 더 많은 독자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평생토록 이어지는 건 아니다. 마치 연애처럼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한시적 관계다. 진보적 가치를 통해서 황석영을 만나왔던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번 일은 분명한 배신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작가가 마음이 바뀌어 바람을 피우는 건 자유지만 그걸 이해해 달라고 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다. 한번 깨진 관계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 계기로 기존의 황석영 독자들은 많이 떠나갈 것이다. 이제 수구 우파를 향한 그의 본격적인 구애가 펼쳐질 것은 뻔하다.
‘중도실용’이라는 실체도 없는 모호한 틀 속에서 황석영이 구상하는 세계에는 관심 가질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수 십년간 쌓아온 좋은 문인이라는 이름을 버려가며 그리고 오랜 고정 독자층을 배신해가며 얻으려고 하는 새로운 가치가 과연 그가 원하던 것이었을까? 그건 작가 자신이 판단할 문제지만 오랫동안 그를 후원하던 배신당한 독자는 그를 곱게 보내주진 못할 것 같다. 수구 골통정권의 늦둥이로 이문열과 복거일을 넘어서는 인물로 거듭나는 과정을 지켜봐야할 독자의 심정을 그가 조금이라도 이해해줄 마음이 있다면 깨끗이 떠나야 한다. 중도를 운운하며 자신은 변하지 않았고 궤변을 늘어놓는 모습은 그를 추한 늙은이로 만들 뿐이다.
모든 문학이 그렇지만 황석영 같은 작가가 붙잡고 있는 현실은 작품의 기반이다. 황석영이 사회적 약자나 민중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이 아니라 자본가의 시각에서 소설을 썼다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중도실용의 한국이 그가 생각한 이상적 세계라면 그의 시대적 인식은 한심한 수준이다. 잘해봐야 기회주의자들이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사는 이기적 욕망이 넘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공감할 수 없는 현실로 쓴 작품이라면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 황석영 관련 기사도 검색해봤더니 문단에서는 벌써 그의 변절이 화제가 되었다. 그의 ‘화려한 변신’이 독자를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작가 생명에 치명적인 독이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야 말 것이다.
독자를 잃어버린 작가는 시대적 울림이나 감동도 끌어내기 어렵다. 황석영이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하거나 아예 정치계로 진출할 계획이라면 모를까, 기존의 독자까지 끌어안고 가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황석영은 문화, 예술, 언론 분야에서 학살에 가까울 정도로 탄압받고 있는 지금 시대의 현실을 포착한 소설을 썼을 것이다. 광주항쟁에 관한 글을 썼듯이 용산학살이나 촛불과 탄압받는 민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이 그의 과거를 대표하는 모습이었으리라. 우리가 알고 있었던 황석영은 이미 죽었고 이제 세상을 향해 확실한 구라를 치고 있을 뿐이다. (다음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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