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불던 찬바람이 사라지고 날씨가 풀렸는지 새 소리가 잦아졌습니다. 눈에 뜨일 정도로 많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참 보기 좋군요.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라’는 하늘의 뜻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봅니다. 그냥 당연히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알고 고마운 줄 몰랐던 뭇 생명들의 소중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게 하루하루가 다른 것 같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이라는 성가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런 걸 보면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어쩔 수 없는 예수쟁이인 것 같습니다.
날씨가 풀린 만큼 자동차 소음의 강도는 높아지니 하나가 좋으면 다른 하나는 좋지 않다는 게 자연의 섭리임을 인정화고 받아들이려 합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정상 정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입산’이라고 합니다. 산이 나를 받아 주었기 때문에 올라간 것일 뿐이라는 겸손한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몇 주 다른 꼭지들과 교대를 하거나 주말에 촛불집회에 나가 지인들을 만나 ‘입산했다’고 하면 전부 웃더군요. 자연 속에 내가 들어간 것이고 자연을 지키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에 그렇게 말한 것뿐인데 생소해 하더군요. 저 역시 이런 경험하기 전에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없이 자신을 낮출 때 남들은 그 사람의 진질한 마음을 알고 인정해 주는 걸 봅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서서히 스며든 물이 확 배이듯이 낮추는 자세야 말로 내가 지녀야 할 덕목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른이나 존경하는 분을 만나면 절을 올리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최고의 예의 표현 방법이죠. 고인에게는 같은 항렬이라면 아무리 나이가 적어도 절을 합니다.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귀가 아프도록 들어서인지 ‘저 놈 별나다’는 소리를 듣지만 ‘인사 하나는 잘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은 기본예절을 강조한 부모님들의 가정교육 덕분입니다.
불가에서는 삼배를 하고, 장승이나 고사를 지내며 기원을 할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연 속에서 한 없이 낮아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 성찰의 기회가 된 ‘나무 위 농성’이 지금까지 숲만 쳐다보고 피상적으로 살아온 제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소중함과, 숲 속에서 더불어 사는 작은 생명체를 느끼고 볼 수 있어 새로운 수행의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언제쯤 밀고 들어올 것인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어제 대법원에서 ‘절차를 무시한 행정 집행에 항의한 것은 공무집행 방해가 아니다’는 최종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절차를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적인 무리한 집행이 불법임을 명확히 한 판례라 앞산 지키는 일에 큰 힘을 얻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예수의 말씀처럼 닥친 그 때 최선을 다하는 게 좋지 미리 사서 고민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로 제가 상수리나무 위 작은 성으로 올라온 지 50일이 됩니다. 덕분에 책도 많이 보고 생각나는 대로 수시로 글도 쓰고, 어렵게 살아가는 조카들과 자식 걱정도 전 보다 많이 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노릇을 게을리 하다 이제야 정신이 든 것이죠. 피상적으로 느끼던 것을 많은 생명이 살아 꿈틀 거리는 곳에 직접 와 있으니 깊이가 다르고 감회가 새로운 것 같습니다. 어제 듣지 못한 새로운 새 소리를 들으며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2009년 2월 19일 ‘나무 위 농성’ 68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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