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잘 지냈니 보라ㆍ정민아?
명절에는 보곤 했던 너희들 얼굴 못 본지 제법 된 것 같구나. 내게는 너희들이 영원한 큰딸들인데 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구나. 오는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네. 원래 계절대로라면 아직 찬바람이 불 때니 그리 원망하거나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말야. 초봄처럼 따뜻해 몸에 긴장이 풀렸는데 다시 추워지니 더욱 움츠러드는 것 같다. 비록 몸은 움츠러들더라도 우리들의 마음만은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꾸나. 이제 모레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에,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머지않은 것을 보니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에 분명한 것 같구나.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에워싸고 있던 어둠과 겨울 세력이 봄소식에 밀려 멀리 달아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남들이 안으면 울다 이 아제비 품에 안기면 조용하던 보라와 언제 봐도 경우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던 정민아. 집안 잔치 때 보면 ‘삼촌’ 하면서 달려오곤 하던 너희들이 20대 중후반의 장성한 청년이 되었네. 영원한 삼십대 같던 복현동의 이 아제비도 쉰의 문턱에 들어섰으니 ‘세월 빠르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오는 걸 보니 늙어 가는가 보다.
욕심 많은 너희 조부모들이 집안 재산 꿀꺽해 ‘상종 못한다’고 내가 고집 부려 명절에 조차 얼굴도 보지 못해 미안하다. 나도 남들처럼 적당히 넘기고 오순도순 제사도 같이 지내며 살아온 이야기도 하면서 명절을 보내고, 너희들이 동생들 챙겨주는 모습 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하구나. 언젠가 내게는 누님같은 너희들 어머니가 “서방님, 그 정도하면 된 것 같은데. 그러다 조카들 얼굴도 안 볼 거냐?”고 하셨을 때 “남 괴롭히고 도둑질한 인간들과 상종하라고 배우지 않았다.”면서 섭섭할 정도로 매정하게 자른 적이 있었어. 마음 여린 양반이 상처 받지는 않으셨는지 오래도록 마음에 걸려 불편했어. 조금 더 부드럽고 완곡하게 표현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분에게 시동생이란 게 너무 모질게 해 버렸지.
속이 깊은 분이라 이해는 하시겠지만 내 마음이 지금도 편치 않다. 너희 아버지 돌아가신 후 고생만하고 자랐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해 할 말이 없구나. 이제 팔순 노인인 복현동 할아버지는 지금도 “서울 질부와 손녀들은 어떻게 지내느냐”면서 늘 걱정하신 단다. “큰 집에서 계집애들이라고 생활비 한 푼 안 보내주었다”고 말씀 드렸더니 어지간해서 내색하지 않는 내공이 깊은 어른의 얼굴이 굳어지시는 걸 본 기억이 생생하다. 대봉동에서 철거만 당하지 않았어도 종손녀 친손녀 가리지 않고 손 크게 도와주실 분이 그러지 못하니 많이 상심해 계시지. 할머니는 해린이 때문에 고생하시면서도 같이 걱정이신데 자식이 되어 그 짐을 덜어드리지 못해 면목이 없지.
우리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쥐어짜는 세대 착취가 계속되고 있어 너희들의 희생이 너무 크구나. 사회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알아야 하는데 천박하게 쥐어짜고만 있으니.... 바르게 장성한 너희들에게 이 못난 아제비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마는 “불의 앞에 분노하고, 나 보다 약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하지 않을 수 없구나. 나도 그리 바르게 살아오지 못해 부끄럽다마는 그렇게 살려는 노력은 지금도 하고 있고, 자식 같은 너희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마. 언젠가 너희들이 진로 문제로 고민 할 때 “경제적인 독립 없이는 여성의 독립은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살아갈 기반이 없으면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는 게 여성들이 처한 현실임을 너희들이 잘 알거야. 현명한 너희들이니 지혜롭게 잘 헤쳐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모든 게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우리 사회에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민주노동당을 만드는데 벽돌 하나 쌓는 심정으로 활동하다가 서로 생각이 틀려 비바람 맞아가면서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 일에 함께 하고 있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했더라면 갈라지는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파경에 이르고 말았어.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존중해 주는 동지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옮겼다.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한다. 너희들과 이런 문제를 놓고 밤새워 가며 토론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지금은 대구의 심장부인 앞산을 파괴하는 미친 짓에 맞서 지키려고 몸을 보태고 있다. 뭇 생명들이 살아 있는 곳에 와 있어 보니 생명 하나하나의 소중함이 무엇이란 걸 조금씩 깨닫겠더구나. ‘나이가 몇인데 그러느냐’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이가 있기에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절실히 드는 것을 보니 선택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칼바람 부는 겨울에 18미터 높이의 상수리나무 위에서 이런 싸움을 할 수 있는 몸이 된다는 것이지. 몸이 안 따라주면 제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 해도 못할 건데 ‘하느님의 영이 머무는 성전’인 몸을 잘 관리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어 가슴앓이 많이 하는 해린이에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하나 밖에 선택 할 수 없는 처지라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 달라’는 기도는 늘 하고 있다. 너희들도 같이 기도해 주면 좋겠구나. 인정 많은 서내동의 너희들 왕고모께서 친정 손녀가 귀여워 보라를 안자 바로 울었는데 다시 내가 안으니 울음을 뚝 그쳐 ‘녀석들 핏줄은 알아보네’라고 한 적이 있었어. 지금 해린이 만할 때 정민이는 ‘삼촌만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요’ 해서 내 가슴을 울리기도 하고. 너희들에게 한 것도 없는데 잘 봐주고 따라줘서 고맙다. 할머니 품에서 고생하는 너희들의 동생 해린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고마운 줄 알면서도 신세 갚지 못해 미안하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 상수리나무 위에 올라온 것은 해린이와 너희들을 사랑하고, 이것만은 지켜서 물려줘야겠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그리 힘들지 않단다.
너희들은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이니 다소 무모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불가능을 꿈꾸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이 든 나도 아직 불가능을 꿈꾸며 살아가는데 너희들이 못할 일이 없지. “불가능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가능한 것도 하지 못한다”는 어느 신학자의 말처럼 남들이 보기에 발칙하게 한 번 살아보자꾸나. 몇 일 바람이 많이 불어 내가 올라와 있는 상수리나무가 많이 흔들리네. 다행히 평소 이런데 익숙한 직업이라 잘 지내고 있다. 가까운 곳에 내 몸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주치의사인 후배가 있어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자살률 세계 1위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알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우리들이라도 ‘희망의 끈’만은 놓지 말고 살아가자꾸나.
달비골에서 너희들을 사랑하는 삼촌이
'환경과 생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앞산을 지키는 싸움을 도와주는 고마운 분들에게 (0) | 2009.02.18 |
---|---|
우수에 앞산달비골에서 전하는 소식 (0) | 2009.02.17 |
앞산꼭지들의 쉰다섯 번째 일촌계 (0) | 2009.02.16 |
앞산을 지키는 일에 함께 하는 사람들 (0) | 2009.02.16 |
앞산 달비골을 벗어나 주말 외박을 다녀와서 (0) | 2009.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