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을 지키는 싸움을 도와주는 고마운 분들에게

녹색세상 2009. 2. 18. 12:48
 

어제까지 차갑던 바람이 조금 풀린 것 같습니다. 오늘이 겨우내 얼었던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이군요. 내일이면 제가 나무 위에서 보낸 지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렇게 오래 농성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생명을 지키고 대구의 심장부를 지키는 ‘선한 싸움’에 함께 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영광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할 줄 알았더라면 아예 도망가고 말았을 겁니다. ‘사람 한 치 앞을 모른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일이 닥칠 수도 있고, ‘의무감이던 즐거움이던 십자가를 지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귀한 성찰과 수행의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제 몸이 엄동설한의 칼바람에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10여 년 가까이 치료해 온 주치의사인 후배에게 ‘겨울철 나무 위 농성을 하기로 했다’고 했을 때 순간 얼굴이 확 굳어지더군요. 그 친구가 고 1때부터 봤으니 30년 가까이 되었는데 그렇게 굳은 얼굴을 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환자의 비밀을 지키는 게 의사라 ‘필요한 건강 확인 해 달라’는 부탁 아닌 압력을 바로 던져 버렸지요. “형님의 선택이니 당연히 존중하지만 의사로서 말리고 싶습니다.”며 사정을 하더군요. 저 역시 천막에서 잠을 자 본지 20년이 되었는데 긴장하지 않을 수 없기에 “약속을 지켜야 하니 필요한 모든 검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후배는 자신의 의학지식과 임상 경험을 총 동원해 진료 기록을 모두 검토하고 아주 섬세하게 확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면 비대칭’이라며 “신경과 가서 검사하고 상의하자”며 안면근전도 검사를 받으라고 해 바로 달려갔습니다. 검사 결과 “약간의 비대칭은 있으나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고 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신경과에서 받은 처방전을 보여주었더니 이비인후과 의사인 자기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약이라 입력 시켜 놓는 등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 주었습니다. 연말 상수리나무 위로 올라오기 전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보훈병원 정형외과에도 후배가 있으니 형님 마음 푸근하겠습니다.”면서 격려도 아끼지 않아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습니다.


제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고 누리편지와 쪽지를 보낸 친구들도 많습니다. 어느 대기업의 상무로 있는 친구는 “친구인 너의 선택이니 존중한다. 건강 잘 챙겨라.”고 격려해 주었고, 이런저런 일로 조직 사건에 엮여 별을 몇 개 달았던 친구는 “추운데 무작정 혼자 하지 말고 돌아가면서 하라”면서 엄동설한의 차가운 골바람에 몸조심하라는 걱정도 해 주었습니다. 물론 ‘난 터널 찬성한다. 그런 반대 하지 마라’며 염장을 지른 인간도 있지만 ‘친구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따뜻한 마음 한 자락을 전해 온 벗들이 더 많습니다.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라’면서 보고 싶은 책도 사주고, 빨래하기 힘들다고 양말과 내의를 챙겨 준 친구들도 있습니다.


주머니 사정 좋을 때 사 놓은 사진기가 큰 고장이 나서 고민하고 있던 차에 얇은 제 주머니 사정을 알고 “좋은 건 못 사주지만 찍을 만 한 걸로 장만하라”며 “기록이 중요하니 꼭 카메라 사야 한다”며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배려해준 친구도 있습니다. 추운데 얼지 말고 농성 잘하라고 기능성 등산복까지 갖다 준 후배 등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있어 이렇게 ‘나무 위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틈 날 때 마다 조용히 찾아와 ‘얼굴 보러 왔다’며 용기를 돋우어 준 많은 동지들도 있지요. 비록 몸이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뒷바라지 해 준 덕분에 저만 생색내게 되어 미안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마지막 순간까지 ‘아닌 것에 저항’ 하는 것이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기에 몸이 허락하는 한 싸우려 합니다.


직업의 특성상 얼굴 드러내지 못해 ‘죄송하다’며 미안한 마음을 담은 글을 보내준 후배들도 있습니다. “형님 필요한 것 챙겨가야 하는데 오해할까봐 못 간다”는 공무원 신분의 후배는 “대구의 심장부를 지키는데 진보ㆍ보수가 어디 있으며 직업이 따로 없다”며 격려해 주니 고맙기 그지없지요. 처음에는 말렸지만 “이왕 시작한 거 좋은 열매 맺기를 빈다”는 많은 이들의 정성 때문에 제가 지금 상수리나무 위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먹어야 잘 싸운다’며 끼니를 꼬박 챙겨주는 고마운 분들의 정성 또한 잊을 수 없지요. 너무 잘 챙겨 줘 살찔까 걱정할 정도니 그 분들의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믿습니다. 고마운 분들에게 이렇게 밖에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제 몸이 버티는 한 잘 싸우겠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고 있고 오전 오후 두 번 씩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몸 관리 잘 하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2009년 2월 18일 ‘나무 위 농성’ 67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