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 달비골에 바람 부는 금요일의 편지.

녹색세상 2009. 1. 10. 23:28
 

어제는 조용한 하루였습니다. 날씨도 따뜻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천막 밖으로 나가 운동하기도 좋고요. 농성장 지킴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걱정인데 어제는 민주노동당에서 하루를 책임져 주니 고마운 일이지요. 연초인데다 새해 살림살이 걱정 때문에 각 단체마다 바쁘겠지만 조금씩 신경만 쓰면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일을 마치 ‘고뇌에 찬 결단’을 해야만 되는 것으로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방학이니 아이들과 바람도 쏘일 겸 겨울 숲 나들이 삼아 오면 되는 일인데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닌 모양인가 봅니다. 앞산터널 공사 문제는 ‘대구판 경부운하’로 잘 알면서도 막상 몸은 못 움직이니 이러다 경부운하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몇 일 고민을 하다 새해 초에 써 놓은 글을 당 자유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엄동설한에 나무 위에 당원이 올라와 있는데 외면하지 마라’는 호소의 내용입니다. 글로 생각을 전달하는 게 한계가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어 다소 눈총을 각오하고 올렸습니다. 없는 살림살이 꾸려나가느라 고생하지만 조직원 챙기는 것은 당연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더군요. 어떻게 보면 조폭들의 의리보다 못 할 때가 있어 이래 놓고 무슨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당기위원회에 누구를 제소해 놓아서 그런지 올라올 때 당원들에게 앞산의 소식 전하게 ‘알려도 괜찮은 당원들 이메일 주소 좀 알려달라’고 했더니 시큰둥하더군요. 안 그래도 어려운 때에 시한폭탄 던져 놓은 형국이라 사람이다 보니 불편한 감정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방치해 두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30년 가까이 서로 비비며 지내온 고등학교 모임에 연락을 해도 묵묵부답입니다. 농성장에 필요한 물품이 부족해 도움도 요청하고, 동문이름으로 현수막도 하나 걸었으면 해서 올라오기 전부터 미리 전화를 했건만 총무는 완전 ‘함흥차사’입니다. 보험으로 생계를 꾸려 가는데 신규 영업은 커녕 곳곳에서 해약이 발생하니 제 말이 귀에 들어 올리 만무하겠지요. ‘쌀독에 인심난다’는 옛말처럼 밥줄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판에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라 봅니다. ‘형님, 상의해 보겠습니다.’고 한 게 언제인데 감감 무소식이라 화도 나지만 서울 있는 인간을 어쩌지도 못 하니 벙어리 냉가슴만 앓을 뿐입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처럼 어려움에 처할수록 몇 발자국 물러서서 보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 중의 하나이건만 허겁지겁 하다가 고생만 하는 게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몇 번의 고비를 넘겨봐서 그런지 아무리 급해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경험을 최고로 여기는 것도 위험하지만 간접적인 경험조차 해 보지 않은 사실을 안 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40대가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처럼 움직이는 진보진영의 현실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도서관에 쳐 박혀 학문이라도 연구하면 다행이련만, 너나 할 것 없이 4~5퍼센트 자리에 목을 매달고 몸을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요구를 당당하게 표시하는 그리스 민중들의 강력한 저항이 부럽기만 합니다. 경찰의 몽둥이에 찜질을 당하고 군화발로 짓밟히고 방패로 찍혀도 ‘비폭력’을 외치는 우리 현실, 세계적인 저항의 수준에 미치기는 커녕 근처도 못가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대 청년이 나무 위에 올라와 있는 것 보다 쉰을 바라보는 늙다리가 있는 게 파급 효과야 크겠지만 젊은 놈들이 아예 안 보이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이러다가 일본 공산당처럼 머리 허연 영감들만 앉아 있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사회 구조를 송두리째 뒤 흔드는 저항을 하지 않고는 등록금 문제를 비롯한 자신들의 교육과 생존권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겨우 진보정당의 학생당원이란 사실에 자위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없는 애늙은이가 된 청년들을 보노라면 갑갑한 게 아니라 분통이 터지지요. 방학 기간 동안 일요일 하루 교대로 어묵포장마차 맡는 것도 안 되는 실천 능력이라곤 전혀 안 보이는 게을러터진 그들과 같이 갈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기만 합니다.


조용하니 이런저런 대책 없는 생각이 떠오르네요. 머리 싸맨다고 해결되지도 않을 일을 걱정만 해대는 걸 보니 나도 늙어가는 모양입니다. 오늘따라 오래도록 못 본 서울의 질녀인 정민이와 보라가 생각납니다. 일류대학에 대학원까지 졸업했으니 ‘출세한다’며 온 집안의 주목을 받은 양반이 마흔도 안 되어 요단강 넘어가 버렸으니 집안은 쑥대밭이 되어 버렸지요. 착하기 그지없는 질녀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남편 없이 자식 키우느라 갖은 고생한 형수는 온 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으니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죠. 몸이라도 건강해야 버티는데 생계 걱정에 편할 날이 없으니 성할리 만무하죠. 젊을 때 온갖 고생 다 했으니 노년이라도 편하게 살아야 할 텐데 시동생이란 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질녀들 등록금 한 번도 안 내주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요.


질부지만 ‘남편 일찍 보내고, 욕심 많은 시어른들 만나 고생한다’고 아버지는 늘 걱정이십니다. 애비 없이 자란 종손녀들에 대한 걱정 역시 떠날 날이 없고요. 대봉동에서 철거만 당하지 않았어도 종손녀들 학비는 챙겨주고 잘 커가는 걸 보는 재미로 살아오셨을 어른이 그러지 못하니 그 속이 편할리 만무하겠지요. 울다가도 우리 형제가 안으면 울음을 뚝 그쳐 작은 고모는 ‘녀석들, 핏줄은 알아본다.’고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20대에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정말 엿 같습니다. 자식과 질녀들에게 부모 노릇 못 하는 못난 어른, 못난 조상이 되어가고 있어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형수와 질녀, 자식들 앞에 무릎 꿇고 울기라도 해야 제 속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습니다.

 

                        1월 9일(금) ‘나무 위 농성’ 27일째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