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 운동하러 천막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잦습니다. 좁은 공간에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이리저리 불편한 데가 많지요. 어제는 녹색소비자연대에서 낮 당번이라 같은 당원인 정미나 씨가 왔습니다. 낯 익은 얼굴을 보면 편해 이런저런 부탁을 하기 좋은 게 사람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나무 위로 올라왔을 때 안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귀찮은 일 마음 놓고 시켰을 텐 데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 봅니다. 격려차 방문 왔다가 ‘필요한 것 없느냐’는 말 한 마디 잘못 꺼내는 바람에 여러 가지 청탁을 해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미루는 법 없이 바로 챙겨다 준 고마운 동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신 잘 싸우라는 격려의 뜻이기도 하겠지요. 오래도록 같이 지내왔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폭이 넓어진 것이지요.
여야 합의로 언론관련법 처리를 미룬다는 발표가 있자 언론노조가 총 파업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야당과 국민들의 강렬한 반발도 있었지만 언론노동자들의 파업을 공권력을 투입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부담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튼튼한 조직의 힘과 몇 사람 해고되고 감옥 간다 해도 변호사 선임과 생계비 지원이 충분하니 가족들 끼니 걱정을 안 해도 되니 한 번 붙을 만 하죠. ‘방송을 끊어 방송을 지킨다’는 방송노동자들의 뭉친 힘은 파급 효과가 대한했습니다. 문소리나 정찬 같은 배우들은 ‘언론노조 총파업을 지지한다’며 당당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아닌 것에 저항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며 ‘파업 현장으로 가지 못하고 시상식장에서 와서 마음이 편치 않다’며 자기 소신을 밝히는 그들을 보면서 희망이라는 말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못 배운 딴따라가 아닌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연기자’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리스의 폭동 소식과 2008년 한국의 촛불을 정리한 글이 있어 자세히 읽고 관점이 다른 부분을 수정해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촛불만 들고 ‘비폭력’만 강조한 우리와는 달리 세계의 저항 수준은 가히 민란에 가까울 정도로 폭발적입니다. 공공기관의 점거와 은행 파괴 등 행정을 마비시키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합니다. 짱돌은 기본이고 성능 좋은 새총으로 돌과 나사 같은 쇳덩어리를 쏘는 등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대항해 싸우던 우리 보다 저항의 수위가 더 높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경찰의 몽둥이에 얻어터지고 방패에 찍히면서도 계속 비폭력을 말하는 우리보다 치열하게 싸우는 그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늦어도 설이 지나면 어떤 형태로든 태영건설이 벌목 작업을 강행할 텐데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이런 저런 걱정이 앞섭니다. 11월 단풍이 절정일 때 일을 벌였으면 등산객들의 이목을 집중 시킬 수 있었는데 시기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변호사 한 명만 붙어줘도 문화재청의 ‘공사중지 명령문’을 바탕으로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해 보련만 나서는 인간이 없으니 정말 분통 터집니다. 대구시와 붙는 것이라 위험 부담이 크겠지만 명색이 민변이라는 그들이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서로 미루기만 하니 열악한 대구에서 저항하는 것이 어렵기만 합니다. 그래도 어딘가 길이 있을 것이란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겠지요.
파동 용두골에서는 계속 불법 공사 중이고 이식하려다 들통 나 다시 옮겨 온 나무들은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겨울철에 잘못하면 아름드리나무가 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삽질에 미친 그들이 생명에 대한 고민을 할리 만무하죠.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는 빼 돌려 삥땅도 했을 텐데 도둑질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도 하네요. ‘생태의 보고’라며 거품 물던 먹물들은 모두 빠지고 오직 몸으로 때우는 사람들만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 내가 있다는 게 기쁘고 다행이라는 위안을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추운 겨울에 이름 모를 새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이것 또한 달비골에 온 재미 가운데 하나이겠지요. (오늘은 2009년 1월 8일 나무 위 농성 26일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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