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태

앞산 달비골 상수리나무 위로 올라온 아이들의 이야기

녹색세상 2009. 1. 7. 15:53
 

어제는 날씨가 좀 풀려 전열기를 돌리지 않고도 지낼 만 했습니다. 전기 소모량이 많은 제품이라 전자파 또한 무시할 수 없겠지요. 바닥에는 전기장판에다 종일 켜 놓은 컴퓨터 등으로 인해 온 몸이 강력한 전자파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지요. 울산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직원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아 이 추운 날 100미터 높이의 소각장 굴뚝 위에 올라가 ‘복직시키라’며 목숨을 건 절규를 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사주인 귀한 집 왕자님 정몽준 의원이 사실을 모를리 없건만 묵묵부답입니다. 재벌 집에서 돈 걱정 없이 자랐으니 없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리 만무하죠. 그러니 버스비 ‘70원’이란 말에 교통카드도 청소년용을 들고 나오는 희극을 연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모 국립대 전자공학과에서 반도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후배에게 들은 말이 생각납니다. 지도교수는 대구에서 알아주는 버스회사 집 아들인데 외국유학에다 어려움 모르고 살아 돈이 없어 책을 사 보지 못하는 연구원인 대학원생들의 심정을 모른다고 하더군요. 너무 어이없는 일이고 도무지 납득할 수 없어 ‘정말이냐’고 다시 물었더니 ‘돈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 못하더라’고 합니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데다 교수 월급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 그런지 다행이도 연구용역을 따는데 눈이 뒤집히지 않고, 굳이 의뢰가 들어오면 ‘이 연구 해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 기본은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철학의 기본 명제가 딱 맞아 떨어진다 걸 살아오면서 다시금 느끼곤 합니다. 지금 제가 상수리나무 위에서 하고 있는 고생은 100미터 넘는 소각장 굴뚝에 매달려 절규하는 노동자들에 비하면 별 너 댓개 붙은 호텔의 생활이라 황송할 따름이지요. 얼른 내려오라고 소각기 가동도 중단 시켜 온기마저 없는 상태에서 겨우 물만 마시며, 울산 미포만의 칼바람을 맞고 있다는 소식은 듣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만 합니다. 달비골에 있는 제가 이러할 진데 굴뚝에 매달려 있는 노동자들과, 밑에서 그저 위만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속이 어떨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요.


‘음식물을 올려주면 더 오래 버틴다’고 못 올려 보내게 하는 야만적인 현대중공업과, 간접 살인을 보고도 제지는 커녕 최소한의 인도적인 조치조차 취하지 않는 공권력에 대한 분노는 너무 당연할 것입니다. 이를 쳐다보고만 있던 노옥희 울산시교육위원은 “나의 노동자 제자들을 죽음으로 내 몰지마라”고 정몽준을 향해 간곡히 호소하건만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사람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 붙여 항복을 받아 내려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이 놈의 세상을 향해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한다면 부질없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불가능을 꿈꾸지 않는 자는 가능한 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처럼 우린 오늘도 불가능에 대한 꿈을 꿀 수 밖에 없습니다. 성서 속의 많은 이야기는 대부분 신화나 소설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신화 속의 주인공들을 통해 21세기 오늘을 사는 저를 되돌아봅니다. ‘성서의 이야기가 신화이듯 지금 우리들의 삶 역시 신화’라며 ‘신화 속의 주인공은 과거의 그들이 아닌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라고 강조한 남미의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박사의 말을 떠 올려 봅니다. 생명의 존귀함을 알기에 해방신학에서 생명신학으로 연구 영역을 넓힌 내공 있는 학자다운 말인 것 같습니다.

 

  ▲ 어제 누군가 사진을 찍었는데 올려놓지 않아 11월 숲속학교 할 때 사진을 대신 이용합니다.


오후에 책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냥 놀러온 아이들이려니 했는데 도원동 달빛공간의 마을학교 어린이들이 상수리나무 숲으로 체험학습을 왔습니다. ‘거기 어떻게 올라갔어요.’라고 묻기에 ‘올라와 보면 안다’고 했더니 ‘올라가겠다’는 자신만만한 아이들이 있어 인솔한 선생님들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싶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심정 이해하고도 남죠. 그중 네 명이 올라왔습니다. 어른들도 겁이 나 올라오지 못하는 곳을 여자 아이도 둘 올라왔는데 궁금한 게 많은 나이라 알아야 직성이 풀리고, 그렇게 해 주는 게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기고 하지요.


점수 몇 점이 아닌 체험을 통한 학습이 일생을 가는 경우를 많이 보고 직접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핑계를 대는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아이들의 의욕이 꺾일 때가 많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식의 성적에 일희일비 하는 이중적인 저를 되돌아봅니다. 올라온 아이들은 천막 안을 보면서 ‘여기도 있을 건 다 있네’라며 신기해했습니다. ‘이거 짓는데 몇 일 걸렸어요’라는 질문에 경찰의 눈을 피해 야밤에 했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집을 잘 짓는 건설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집도 지을 수 있다’고 노동의 중요성을 잠깐 언급했습니다. 무엇보다 치약 대신 죽염으로 양치질을 하고, 식초를 린스로 사용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일회용 건전지가 아닌 충전용 건전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아마 집에 가면 자전거 전조등에 ‘일회용 건전지 쓰지 말고 충전용으로 바꾸자’고 엄마 아빠에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등산도 오르는 것보다 하산이 중요하듯이 내려가는 게 신경이 더 쓰여 바로 밑에 설치한 비계 파이프에 딛고 서서 무사히 내려갈 때 까지 지켜보며 ‘잘 한다’는 격려를 해 주었더니 얼굴이 확 달라지더군요.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이 사람에게 약발은 그야말로 만점이죠. 삶에 찌들려 이런저런 쓸데없는 일로 시달리다가도 아이들의 해 맑은 얼굴을 보면 힘이 솟아나곤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믿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불가능을 꿈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죠. 비록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고비만 넘기면 밝은 앞길에 보이니 비록 천천히 가지만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는 우직한 소의 걸음처럼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은 1월 7일 나무 위 농성 25일째입니다.